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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김영철의 차 그리고 사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4면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왼쪽)와 리처드 버턴.

영국에서 팬더카(Panther Car Company)를 경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런던의 해러즈 백화점에서 급히 나와 통화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혹시 차를 주문하려는가 싶어 회신했더니, 요르단 후세인 왕의 생일 케이크 주문을 받았다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빵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해러즈의 고객인 요르단의 왕비가 왕이 애지중지하는 ‘팬더 드빌(Panther DeVille)’처럼 왕을 위한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방장이 팬더 드빌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라 케이크를 구울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자부하는 해러즈 백화점의 고객 중 VIP인 요르단 왕비(미국인)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면서 왕이 소유하고 있는 팬더 차에 관한 자료를 부탁했다. 팬더 차의 선전도 되고 혹시 요르단 왕실에서 차를 주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케이크 만드는 데 참고가 될 자료를 백화점으로 보내줬다. 자동차 모양을 한 케이크는 왕의 생일 전날 보잉 747기로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으로 수송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자동차 주문은 없었지만 왕실의 로고가 인쇄돼 있는 편지지에 고맙다는 짧은 메모를 받았다.

리처드 버턴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선물한 팬더 J72.

배우 리처드 버턴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이혼했다가 다시 결혼했을 때, 그는 ‘팬더카 J72’를 엘리자베스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이 9개월밖에 가지 못했고 그 후 엘리자베스는 J72를 처분해 달라고 회사로 연락해 왔다. 영국의 차 등록증명서엔 차주가 바뀌어도 전 차주의 이름을 전부 남겨 놓는다. 엘리자베스가 소유했다는 증명이 남아 있어 고가로 J72를 처분해 줄 수 있었다. 웃기는 일은 결혼 9개월간 그 차는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아 새 차처럼 차고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드 왕이 주문한 매 사냥용 차.

한번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드 왕의 매 사냥용 자동차를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주문 내용이 대단했다. 사막에서도 빠지지 않고 잘 달릴 6륜구동(6X6)에, 레인지로버(Range Rover)의 너비도 왕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30㎝ 늘리고, 차 문은 40㎝ 넓게, 그리고 차 길이는 100㎝ 더 길게 만들고, 지붕은 전동으로 열려 왕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매를 날려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또 차 뒤에는 매가 마실 물이 저장된 보온 물탱크를 설치하고,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시트에만 사용하는 최고급 코날리 가죽을 매가 딛고 있을 파이프에 씌워달라는 요청이었다. 특히 왕의 몸무게가 100㎏이 넘으니 왕의 뒷좌석 의자를 넓게, 의자 전체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도록 제작해 왕이 일어서지 않아도 매를 날릴 수 있게 디자인해 줄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 GPS가 없던 시절인데도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 달라고 했다. GPS 대신 선박용 레이더를 부착했지만 그 무거운 차가 모래에 빠지면 제 발로 나올까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왕은 한 번도 그 차로 매 사냥을 나간 적이 없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가수 엘턴 존이 주문한 팬더 드빌.

이렇게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웨이브리지에 사는 가수 엘턴 존이 팬더 드빌을 사고 싶다며 자신의 저택으로 일단 차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했다. 판매 담당 이사 스티브를 그의 저택으로 보냈다. 유명한 스타를 만날 거라 기대했기 때문에 스티브는 정장을 하고 약속한 시간에 차를 주차하고 엘턴이 나올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엘턴은 나타나지 않았고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문에서 목욕용 가운을 입은 그가 커튼 사이로 정원에 주차된 팬더 드빌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참 만에 엘턴이 스티브에게 엄지를 올려 사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직원의 실망은 컸지만 나는 쉽게 주문을 받아 행복했다.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의 왕자 설리만이 주문한 리무진. 윗부분이 천으로 가려져 있다.

어쨌든 별난 차를 다 만들며 내 스포츠카의 다량생산 체제를 꾸리고 있는데,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의 왕자 설리만이 문이 여섯 개인 리무진을 주문했다. 그의 요구사항은 차에 타면 비행기처럼 안전벨트 사인이 번쩍거리며 ‘Fasten your seat belt’ 음성이 흘러나오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또 차의 컬러는 자기 궁궐과 똑같은 색, 그리고 라디에이터 그릴에 붙는 마스코트는 영국 왕실의 보석을 담당하는 개러드 보석상에서 제작한 18K 금으로 제작할 것 등 ‘디테일’이 심했다.

 9개월 걸려 완성은 됐는데 영국 방송국이 이 차의 소문을 듣고 인터뷰를 요청해 차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왜 여섯 개의 문을 원했을까 하기에 나는 농담으로 부인이 여럿이기 때문이 아닐까 했는데 그 방송이 말레이시아에서도 방영되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다. 후에 알았지만 설리만 왕자는 부인이 한 사람이었고 말레이시아 왕의 딸이었던 것이다. 공개 사과와 지면 사과로 겨우 무마했지만 차 값을 받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또한 세계가 좁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차는 아직도 공식 행사에 참여한다는 말을 들었다.

찰스 왕세자에게 결혼 선물로 주려 했던 팬더 칼리스타.

그러던 중 어느 날 비서가 할리우드에서 마이클 J 폭스가 전화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전에도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팬더 칼리스타를 정말 좋아하고 갖고 싶은데 거래 즉, ‘딜(Deal)’이 없겠는가 하는 ‘협상의 통화’였다. 내 회사는 작은 회사여서 많이 ‘디시(D/C)’는 못해 주겠지만 내 차를 홍보해 주겠다니 큰맘먹고 운송비는 본인이 부담하고 차 값을 50%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마이클은 자기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라면서 페라리·벤츠에서는 무료로 1년 아니면 6개월씩 타고 다니라고 제안했지만 팬더를 원해 거절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6개월 무료 협찬을 원했다. 마이클이 현재 파킨슨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거절하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을 지금 해 본다.

필자는 은행 관리에 있는 팬더카 회사를 1980년에 인수했다. 다음 해에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와 결혼했다. 신문에 찰스 왕세자가 스코틀랜드의 어느 펍에 들렀는데 팬더 차가 주차해 있는 것을 보고 저게 무슨 차냐고 물었다는 기사가 난 것을 봤다. 그래서 혹시 내가 팬더 차를 결혼 선물로 주면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을 하고 싶다는 긴 편지와 함께 자동차 사진 등을 첨부해 버킹엄궁으로 보냈다. 한 달 후 답이 왔는데 고맙지만 자선사업단체에 기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선단체에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야미디어 회장(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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