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서해 5도’ 이것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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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의 교훈은 어디로 갔는가. 8개월 만에 다시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했지만 우리 군의 대응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해병부대의 미진한 대응사격은 우리 군의 방위태세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교전규칙 개정과 전력증강 등의 대책은 나왔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따르지 못했다. 북한이 한 단계씩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면서 전력·타격 능력을 높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해 5도 방어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통한 억제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곳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남을 것이다.

군 전문가를 통해 서해 5도 방어의 문제점과 대책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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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비대칭 남북 전력 동굴에 숨은 북한 해안포 박살 낼 무인 공격기 도입 필요

북한군이 23일 76.2㎜ 해안포와 122㎜ 방사포 등 170여 발을 연평도로 향해 십자포화로 퍼부을 때 초기 맞대응에 나섰던 군의 전력은 K-9 자주포 ‘3문’뿐이었다. 북한에서 12㎞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연평도엔 K-9 자주포 6문만이 배치돼 있었을 뿐이었다. 이 중 1문은 공격받기 직전 실시한 사격훈련에서 격발이 안 돼 정비 중이었고, 다른 2문은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받아 작동되지 않았다.

 연평도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화약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5개 도서의 남북 전력은 북한의 일방적 우세 구조다. 5도가 남한과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북한 육지를 따라 나란히 있는 위치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이 ‘선’이라면 서해 5도는 ‘점’에 불과하다.

 이들 섬에는 K-9 자주포를 제외하면 M47·M48전차의 포탑을 개량한 90㎜포, 105㎜포와 박격포 등 사거리가 10㎞ 안팎밖에 안 되는 무기가 배치돼 있다. 이 포들로 쏴봐야 포탄이 북한에 닿지 못한다. 물론 최신형 K-9 자주포는 살상 반경이나 사격 속도에서 북한군 포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북한군의 압도적 전력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K-9은 연평도·백령도에 각각 6문씩 12문이 배치된 반면 북한군은 서해 5도를 겨냥해 1000여 문의 해안포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상군 병력도 수만 명의 북한군 4군단에 대응해 해병대 5200여 명이 서해 5도에 주둔하고 있을 뿐이다. 김성만 전 해군 작전사령관(중장)은 “우리가 서해 5도에 대해 사실상 전력 투자를 중단한 사이 북한은 1980년대까지 서해안 일대를 지하요새화한 데 이어 2007∼2008년에는 해안포의 사거리·화력을 증강시켜 대구경포로 대폭 교체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2005년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서해 5도에 배치된 해병대원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북한보다 우세한 것은 정보 전력인데 이조차 서해 5도는 등한시됐다. 날아오는 포탄의 궤도를 잡아 역공의 타점을 잡는 대포병레이더(AN/TPQ-36·37)는 올 초에야 백령도·연평도에 한 대씩 배치됐지만 이마저도 직사포 포착은 어렵다. 전직 고위 해군장성은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려면 무인정찰기(UAV) 등이 필요한데 서해 5도엔 평상시엔 없어 육안 관찰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인식 전 해병대사령관(중장)은 “상륙전은 물론 대포병전까지 대비해 사거리가 짧은 포들을 K-9 자주포로 대거 교체하고, 정보 장비를 증원해 사전 정찰능력과 유사시 타격능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요새화된 북한군의 해안포에 대응해 서해 5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무인공격기 같은 적극적인 공격수단을 동원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병건 기자

② 수세적 작전개념 서해 5도 육·해·공·해병 합동사령부 창설을

서해 최고 전략 요충
북, 2시간이면 점령
해·공군 의존 벗어나
독자적 군 조직 필요

천안함 폭침 한 달 뒤인 지난 4월 21일. 국방부 내부의 서해 5도 방어대책회의에서 충격적인 시나리오가 소개됐다. 남북 간 위기 고조 시 북한군이 백령도와 연평도를 점령하는 도발을 시도할 우려가 있으며, 그럴 경우 최인접 연평도는 2~3시간이면 점령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평도 2~3시간 점령 시나리오’의 근거는 이렇다.

북한군 서해 5도 상륙 저지의 기반인 우리 해군 함정 등 지원 전력이 북한의 해안포·장사정포와 사거리 95㎞에 달하는 지대함미사일(샘릿·실크웜)에 의해 저지돼 접근이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령도(4000명), 연평도(1200명) 등 해병 5200명은 사실상 고립돼 1000여 문의 북한 해안포·장사정포 공격과 특수작전부대의 강습에 희생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23일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지켜보면서 많은 군사전문가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해 5도 방어에 대한 근본적 작전 개념을 고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현재의 해병대 부대와 해·공군 지원 전력에 의존하는 소극적 작전 개념이 아니라 현지의 독자 전력으로도 적을 격퇴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어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해 5도에 육·해·공 3군과 해병대의 독자적 사령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후방의 해·공군 지원전력에 의존하면 대응이 늦어지고, 혼선도 빚어질 수 있는 만큼 평시에 자체 전력만으로도 대응이 충분한 군 조직을 창설하자는 얘기다. 독자 사령부 창설은 ‘적극적 억제’의 대북 메시지도 될 수 있다. 새 사령부 창설이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 육군 병력 및 포병 전력을 추가 배치하거나 해병대 전력을 사단급으로 증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백령도·연평도는 우리나라 국제 민간항로와 뱃길의 안전을 담보하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갖추도록 북한 전력과 대등하도록 전력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 기습상륙부대의 평택 전개도 억지력 강화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효식 기자

③ 손묶인 교전규칙 몇 곱절로 응징하는 이스라엘 사례 참고해야

동급무기 대응으론
북한 해안포 못 부숴
‘선 조치 후 보고’
대응 확실히 해야

‘비례성 원칙’에 얽매인 우리 군의 현행 교전규칙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북한군은 이번에 1, 2차 포격으로 170여 발의 포탄을 연평도에 쏟아부었지만 우리 군은 80여 발의 K-9 자주포 대응 사격에만 그쳤다. 그동안 군 당국은 “적이 공격하면 두 배, 세 배의 화력으로 신속하게 응징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이번 북한군의 연평도 공격 대응 과정에서 보여주듯 우리 군은 2~3배의 화력은 고사하고 비례성의 교전규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24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교전규칙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교전규칙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교전규칙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국방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도발 즉시 공대지 미사일로 적의 발사지점을 정밀 타격하는 게 교전규칙”이라며 군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했다. 한 군사전문가도 “일단 적의 공격을 받으면 공군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몇 곱절로 응징하는 이스라엘의 일관된 교전규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급부대에 대한 보고 전에 먼저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제정한 교전규칙은 정전협정에 따라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가령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북측이 총격을 가해오면 동급무기로 응사한 뒤 경고방송을 하는 정도다. 동급무기로만 대응한다는 현행 교전규칙을 따른다면 요새화된 북한군의 해안포를 무력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확전 방지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둔 이 같은 방어적 교전교칙 때문에 우리 군은 북의 무력도발이 있을 때마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2002년 6월 벌어진 북한 해군과의 2차 연평해전에서 국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게 대표적 예다. 당시 수세적 교전규칙으로 인해 피해가 컸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군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등 5단계로 돼 있던 교전규칙을 개정해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단순화한 바 있다. 교전교칙이 바뀌었지만 이후에도 우리 군의 대응은 무력하기 일쑤였다. 지난 8월 북한군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향해 110여 발의 해안포를 사격해 이 중 10여 발이 남측 NLL 1~2㎞ 부근에 떨어졌을 때도 세 차례 경고 통신을 보냈을 뿐 대응사격은 하지 않았다.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이상우 위원장은 “적이 공격해 오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를 응징하고, 제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전규칙이 바뀌어야 한다”며 “방어적 개념만을 강조한 교전규칙으로는 북한군의 도발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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