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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19> 포맷 제작 TV 프로그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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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외국에서 본 듯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죠. ‘베낀 것 아닌가’ 싶을 텐데, 맞습니다. 다만 몰래 베낀 게 아니라 돈 주고 합법적으로 베꼈다는 게 예전과 다른 점입니다. KBS 퀴즈쇼 ‘1대100’이나 케이블채널의 리얼리티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온스타일), ‘순위 정하는 여자’(QTV), ‘러브 스위치’(tvN) 등이 해외 프로그램의 포맷을 구입해 제작한 것들입니다. 최근 세계 방송시장의 트렌드인 프로그램 포맷 제작에 대해 알아봅니다.

강혜란 기자

프로의 골격, 수출 성공 땐 무한 수익 … 영국·일본 강국

온스타일 채널이 방송 중인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이 프로그램엔 ‘진짜 원조’가 있다. 2001년 영국 TV(브리티시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팝 아이돌’이다. ‘팝 아이돌’ 자체는 두 시즌 만에 막을 내렸지만 프로그램 포맷은 미국 폭스TV에 팔려 ‘아메리칸 아이돌’로 거듭났다.

포맷은 시리즈물에서 각각의 에피소드에도 변하지 않는 요소를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다. 한마디로 프로그램의 기획, 기본 틀이다. ‘팝 아이돌’ 포맷은 호주·캐나다·인도 등 80여 개국에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이렇듯 요즘 세계시장에선 완성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포맷을 사서 현지화해 방송하는 방식이 대세다.

포맷 원작인 ‘America’s Next Top Model’ 가장 위 사진과 해당 사진에서 각각 가운데 위치한 이는 진행자 장윤주와 타이라 뱅크스다. 국내판과 미국판 모두본선 진출자 수가 14명으로 같다. 포맷 제작물은 이렇게 원작의 제작 지침을 따르되 협의에 따라 각국 실정에 따라 재가공이 가능하다.

포맷 판매가 활발한 분야는 리얼리티쇼·게임쇼·오디션 프로 등이다.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저렴한 대신 한번 개발에 성공하면 무한 수익이 가능한 장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다른 시장에서 흥행력이 검증됐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이에 따라 포맷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도 생겨났다. 단일 공간 내 몰래카메라로 일반인의 생활을 관찰한, 최초의 리얼리티 프로 ‘빅 브러더’ 포맷을 전 세계 20여 개국에 판매한 네덜란드의 엔데몰사가 대표적이다.

세계 1위의 포맷 수출국은 전 세계에 유통되는 포맷의 30%가량을 생산한 영국이다. ‘딜 오어 노 딜(Deal or No Deal)’ 같은 게임쇼, 역할 바꾸기 리얼리티쇼, 스타오디션 프로 등을 활발하게 쏟아냈다.

아시아에서 포맷 수출로 주목받는 나라는 일본. 그중에서도 TBS다. TBS는 80년대부터 포맷을 해외 시장에 판매해 지금까지 100개국 이상에 팔았다. 특히 ‘가토짱 겐짱 고기겐 텔레비전’은 미국으로 건너가 ABC의 최장수 프로 ‘아메리카스 퍼니스트 홈 비디오’를 낳았다. 이 포맷은 80개국 이상에 팔려나갔고 일반 시청자 참여·투고 형태의 유행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퀴즈·리얼리티쇼 인기, 제작지침서 ‘포맷 바이블’도

tvN ‘러브스위치’(1)와 QTV ‘순위 정하는 여자’(2)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MBC ‘우리 결혼했어요’(3) 등 국내 포맷의 해외 수출도 활발한 편이다. [각 방송사 제공]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포맷 제작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장 앞선 장르는 퀴즈 프로그램이다. 현재 방송 중인 KBS ‘1대100’은 네덜란드 엔데몰사의 포맷이다(계약 조건에 따라 인터넷 다시 보기 서비스나 녹화판매 등이 불가능하다). 종영한 SBS ‘퀴즈 육감대결’은 일본 후지 TV 예능 프로그램 ‘헥사곤’의 포맷을 사들여 제작됐다. tvN ‘신동엽의 YES or NO’는 미국 NBC의 ‘딜 오어 노 딜’에서 포맷을 가져왔다. ‘딜 오어 노 딜’은 75개국에서 각국 버전으로 제작해 방송된 히트 프로그램이다.

최근엔 케이블채널을 중심으로 리얼리티쇼 포맷 구입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온스타일 채널은 ‘프로젝트 런웨이’의 포맷을 영국 프리멘틀 미디어(Frementle Media)로부터 정식으로 구매해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프런코’라는 애칭 속에 시즌2까지 제작됐고, 내년 초 시즌3를 예고하고 있다. ‘프런코’는 700페이지 분량의 ‘포맷 바이블’(시청률, 대상 시청층 분석, 편성 스케줄에서 세밀한 제작 참고사항 등을 기록한 일종의 제작지침서)에 따라 ‘그림자까지 베꼈다’고 해 화제가 됐다. 매회 탈락자가 나올 때 MC 이소라가 말하는 “런웨이를 떠나셔도 좋습니다”마저 원작의 MC 하이디 클룸의 “You can leave the runway”를 번역한 문장이다.

일부이긴 해도 국내 프로그램도 해외에 포맷 수출됐다. 대표적인 게 중국 SMG에 팔린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다. KBS ‘도전 골든벨’ ‘해피 투게더-프렌즈’, SBS ‘진실게임’, MBC ‘러브하우스’ 등도 수출 계약을 맺었다. 미국과 유럽에 각각 수출된 SBS ‘인터뷰 게임’과 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파일럿 프로까지 제작돼 정규 편성을 기다리고 있다.

현지 정서 맞게 제목·내용 바꾸는 게 마케팅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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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 중인 포맷 수입 프로그램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QTV ‘순위 정하는 여자(순정녀)’ ‘엄마를 바꿔라’, tvN ‘러브 스위치’,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등이 있다. 대체로 대규모 판권 회사(영국 프리맨틀 미디어나 유럽의 RDF 라이츠 등)는 원작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편이지만 프로그램별·회사별로 차이가 있다. 최근엔 오리지널 버전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국내 사정에 알맞게 변형한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 TV 아사히 ‘런던 하츠’의 코너 ‘랭킹 더 스타즈’를 가져온 ‘순정녀’가 대표적이다. ‘스타 싱글녀 10인의 이미지 랭크쇼’라는 컨셉트와 의상, 세트, 진행 등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선 한국 연예계의 특성을 반영했다. 특히 국내판에서 추가한 미니 코너 ‘이지훈의 초이스’ 같은 경우 이매진TV가 인도판 ‘순정녀’를 제작할 때 별도 반영될 정도로 독창성도 인정받았다.

프로그램 제목을 정할 때도 현지화가 작용한다. QTV ‘엄마를 바꿔라’의 원제는 영국 채널4에서 방영한 ‘Wife Swap’. ‘아내 교환’이라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었다. 아내보다 엄마 개념이 앞서는 한국 가족 현실을 고려해 제목을 바꿔 호응을 얻었다. 내용도 부부관계보다 엄마-자녀에 보다 높은 비중을 둬서 문화적인 거부감을 없앴다.

tvN ‘러브 스위치’도 프랑스 오리지널판의 ‘테이크 미 아웃’이 한 귀에 쏙 들어오지 않는 제목이라 바꿨다. 버튼을 눌러 상대를 탈락시키는 프로그램 구성에서 따온 제목이 입에도 한결 쉽게 감긴다는 평가다.

정서의 로컬화도 염두에 두는 면이다. tvN이 27일 출범시키는 대형 버라이어티쇼 ‘네버랜드’는 세 코너 중 두 개 ‘조용한 도서관’과 ‘즐거운 인생’이 포맷 구매물이다. 이 중 벨기에 원작의 ‘즐거운 인생’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젊은이를 상대로 골탕먹이는 스트리트 코미디쇼인데, 제작진은 원작에서 유골함을 가지고 골탕먹이는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아 배제했다고 밝혔다.

QTV 이문혁 제작팀장은 “포맷 제작은 또 다른 창작인 ‘번역’을 할 때 어려움과 비슷하다”며 “국내에도 통할 만한 포맷을 선택하고 이를 적절하게 현지화하고 마케팅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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