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포성 … 불타는 마을 보곤 “전쟁” 판단, 출항허가도 없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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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인천 연안부두에 내린 윤희중(48·사진)씨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쟁터를 벗어났다”고 했다. 23일 밤 8시40분쯤이었다.

 꽃게잡이 선원인 그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생사를 가늠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40분쯤이었다. 이웃집 할머니·할아버지 등 4명을 자신의 카니발 승합차에 태우고 연평도 여객선 터미널로 가고 있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10여 분 거리여서 윤씨는 평소 이웃들에게 이 같은 봉사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출발한 지 5분여쯤 지났을까. 밖에서 ‘타닥~’ 소리가 났다. 분명 총성이나 포성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 ‘꽝’하고 났던 우리 해군 포성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북한군이 사격을 하는 줄로 알았다. 이웃들을 부두에 데려다 줄 때까지 ‘타닥~’ 소리는 계속됐고 뭔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0여 분 후 부두에 이웃들을 내려주고 윤씨는 선주 집으로 향했다. 이날은 선주 집에서 김장을 한다고 해 부인과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뭐든 서로 돕는 게 선원들의 일상생활이었다. 10여 분 후 카니발이 면 소재지로 들어서면서 그는 새파랗게 질렸다. 부근은 온통 불과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집과 건물들은 불타고 있었고 거리엔 주민들을 찾기 어려웠다. 직감으로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김장을 돕기 위해 선장 집에 있는 부인과 아들 걱정이 났다. 그는 최대 속력으로 달렸다.

 오후 3시, 선장 집에 도착해 보니 김장을 돕던 선원 가족 10여 명이 넋이 나간 듯 마당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윤씨는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있으면 어떡해. 빨리 피해야지. 전쟁이다 전쟁이야.” 그들은 바로 옆 농협 마당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거기에는 1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해 있었는데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내부엔 전깃불도 없어 깜깜했다. 누군가 말했다. “북한이 공격을 한 것 아냐.” 그러자 바로 옆 누군가는 한 수 더 떴다. “북한군이 쳐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윤씨는 100여 명과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떨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40분쯤, 선주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인천으로 가자.”

 그러나 무작정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분명 목숨을 걸어야 했다. 언제 포격이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윤씨 가족과 선장이 밖으로 나서자 주민들이 뒤따랐다. 모두 28명이나 됐다. 선장은 자신의 꽃게잡이 어선 신복호를 운항하기로 하고 통제소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통제소는 출항 시간이 늦어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북한 포 사격으로 운항이 위험하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선장과 윤씨 등은 무시하기로 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오후 4시30분. 윤씨는 가족 등 27명과 함께 출항했다. 그는 선장에게 최고의 속력을 내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4시간에 걸친 항해 끝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6시간이 걸렸을 항해였다. 인천 부두에 내린 윤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소.”

 그리고 그가 한마디 더했다. “북한 괘씸한 놈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천=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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