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픈 중증 장애인들은 그 차를 ‘천사버스’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진료하는 장애인 치과 이동진료 버스에서 한 장애인이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제공]


17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서울)시립용인정신병원 주차장. 유리창을 새카맣게 선탠한 하얀색 대형버스 한 대가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선다. 차 앞문이 열리자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여의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희가 늦었죠. 차가 막혀서요”라는 말에 앞문으로 몰린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이구동성 외친다. “아이고, ‘천사버스’가 이렇게 외진 곳에 오는 것만으로 감사하죠.”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이 지난해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치과 이동진료 버스’다. 사람들 사이에선 ‘천사버스’로 불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특수학교, 시립정신병원, 장애인복지관 등 치과에 다니기 힘든 중증 장애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일주일에 세 번, 의사 1명과 위생사 2명, 운전사 등 5명이 한 팀이 돼 움직인다.

 금세 치과 진료실로 변신한 천사버스 안은 치료하는 의사와 받지 않으려는 환자 간의 말싸움이 한창이다. “아프세요”라는 황지영(34) 치과의사의 물음에 환자들은 한결같이 “아니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입 안은 엉망진창이다. 뿌리만 남은 썩은 이에서 고름이 나오는 사람, 하나 남은 윗니마저 흔들리는 사람, 하도 양치질을 안 해 이 색깔이 갈색인 사람, 아예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

휠체어를 탄 채 장애인용 리프트를 이용해 치과 버스에 타는 장면.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제공]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치아를 방치했을까. 박종원 용인정신병원장은 “정신분열증·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은 병의 특성상 ‘자기관리’에 무심해 양치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양치질 시간을 정해 양치질을 시켜도 잘 따르지 않는다. 이가 상해 씹지 못하다 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1800여 명의 환자 중 20%가 잘게 다져 만든 음식이나 영양죽을 매 끼니 먹고 있다.

 천사버스는 이런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다닌다. 45인승 일반 버스(11m50㎝)보다 길이가 1m 긴 버스의 좌석은 5개뿐이다. 나머지 공간에는 진료 의자, X레이 촬영 기기, 자외선 소독기 등 진료도구로 꽉 찼다. 일반 치과 진료실 하나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모습이다. 다른 점도 있다. 진료 의자에는 몸을 묶을 수 있는 끈 3개가 부착되어 있다.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치과 치료의 특성상 뇌성마비나 지적장애 등으로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의 몸을 고정해야 한다. 버스 중간 부분에는 장애인용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다. 버스 개조비용만 3억원이 들었다. 이 돈은 서울시가 지원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천사버스에서 지금까지 1만200여 명이 치료를 받았다. 백승호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장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일수록 환자들의 치아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4월 천사버스가 방문한 경기도 가평군의 장애인 생활 시설 ‘루디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산속에 있는 이 시설에는 연고지가 없는 지적장애인 33명이 살고 있다. 전신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고, 전신 경련이 심해 혼자 걷는 것조차 힘든 지적장애인에게 치과 치료는커녕 외출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백 원장은 “단 한 대뿐인 천사버스가 한 곳에만 여러 번 갈 수 없어 치아 검진, 충치 치료와 같은 일회성 치료밖에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각 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