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한 장만 더 썼으면 됐는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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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1000억원)만 더 썼으면 됐는데, 겨우 기백억원(약 600백억원) 때문에 (현대건설 입찰에서) 떨어졌다니….”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6일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패배한 아쉬움을 이렇게 털어놨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정 회장은 이날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일찍 퇴근했다고 한다. 17일 오전에도 정 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꼭대기층(21층)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인수전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모두들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15일 입찰 가격을 보고받은 뒤 브라질로 출국했다. 기공식을 앞둔 상파울루 공장 점검 차원에서다.

 현대그룹이 인수가격을 써낸 금액은 5조5100억원. 현대차그룹은 5조1000억원을 썼다. 4100억원 차이가 났지만 현대차그룹이 비가격 요소에서 우위를 보여 이를 감안하면 불과 600억원에 당락이 갈렸다. 종합평가(100점 만점)에서 1점 차이도 나지 않았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분석이다. 결과론이지만 현대차그룹이 1000억원만 더 썼으면 현대그룹을 이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입찰 마감일인 15일만 해도 인수팀은 승리를 자신하는 분위기였다. 조위건 인수팀장(현대엠코 사장)과 정보를 총괄한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부사장 등 주요 멤버들은 16일 축하파티를 위해 양재동 부근 고급음식점을 예약해 놨다. 하지만 패배한 것으로 결과가 나오자 예약을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입찰 과정에서 정보전에서 졌다고 보고 있다. 현대그룹이 인수가격을 1000억원 단위가 아니라 100억원 단위(5조5100억원)로 정교하게 쓴 것에 주목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준비한 카드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입찰 준비 과정에서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정보전 등에서 그룹의 힘을 결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전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도 새로운 인수합병(M&A) 대상을 계속 물색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대형 M&A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는 적통성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이외의 신규사업 발굴과 매출 증대라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이번 인수전을 보약으로 삼고 앞으로 시장에 나올 매물을 꾸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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