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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세터’ 위상에 걸맞게 친시장정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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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인교
국제통상학회장,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주 폐막된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는 여러 측면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으로 질서정연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됐고, 우리나라가 설정했던 서울 어젠다도 채택되는 성과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G20 비즈니스포럼 역시 서울 회의의 성과 중 하나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기업인들은 무역 투자, 규제 완화, 서비스, 인프라 투자 등에 대한 다양한 정책 대안을 G20에 요청했다.

 일본이나 중국 같은 경쟁국을 물리치고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시장경제 확산 정책이 국제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일 수 있다. G20 정상회의 개최의 가장 큰 이익으로 국제적인 룰 제정에 참여하는 국가(룰세터:rule setter)가 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아직 국력이 크지 않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룰세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친시장적 경제통상 환경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기업 활동을 옥죄다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상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가축법을 개정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캐나다로부터 제소당했고,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이 확실한 ‘기업형수퍼마켓(SSM)’ 규제법안의 국회 통과가 예고된 상태다. 이 또한 가축법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부의 지나친 물가관리 정책이 결국은 소비자물가도 잡지 못했으면서 지나친 비시장적 정책으로 인해 기업 숨통까지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 정부가 집권하면서 52개 품목을 선정해 물가관리를 하더니 최근 국내외 가격차가 큰 48개 품목을 발표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담합이나 사재기 등 부당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는 게 순리인데, 범국가 차원에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곡물·원자재·금 등에 대한 국제 시세가 폭등해 비용 인상 요인에 의한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데, 시장 논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가격 인상을 억제하게 되면 공급이 줄어들어 역으로 가격이 올라가거나 지하경제가 확산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왜곡된 가격은 유지될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새 국제적으로 급격한 수요와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원당으로 인해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설탕 수급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설탕 제조기업들은 정부의 물가관리 기조로 인해 국제시장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기업은 항상 시장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사업을 운영하고 기업 체질을 강화시켜 가게 마련이다. 경직된 시장통제 속에는 혁신역량이 발휘되기 어렵고, 국제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시각으로 보면 친서민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도가 지나쳐 가격관리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며, 제품수급 구조도 약화될 수 있다.

 가격관리는 시장경제 원리를 부인하는 것으로 G20 비즈니스포럼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업인포럼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과 중국 간에 첨예하게 대립됐던 위안화 환율 문제도 시장 질서에 맡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공산물가격이 시장에서 정해지도록 해야 함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정인교 국제통상학회장·인하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