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쓰나미’ 막을 이중 삼중 방어막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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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경제정책의 흐름상 큰 변곡점이다. G20의 합의에 따라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정책들이 새로 나온다. 동시에 G20 정상회의를 의식해 미뤄뒀거나, 참았던 정책들도 줄줄이 풀려나올 전망이다.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은 자본유출입 규제다. 미국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시중에 돈을 푸는 것)로 인한 ‘유동성 쓰나미’를 피하는 게 시급한데 G20 서울선언이 그걸 막을 근거를 제공했다.

 G20은 이번에 외국자본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유입에 따른 환율변동 위험을 고려해 거시건전성 규제(외자 유입 규제)에 나설 수 있도록 합의했다. 경제여건과 무관하게 외자 유입에 의해 통화가치가 급격히 오를 경우 그렇다. 외국자본의 단기 유출입을 막기 위한 신흥국의 시장개입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다. 이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한 이후 66년간 지탱해온 ‘국제 자본거래 자유화’ 원칙을 뒤엎은 큰 변화다. 정부로서는 자본통제국으로 비춰질 수 있어 그동안 자제했던 자본유출입 대책을 펼칠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정부는 현재 외국인의 국채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원천징수제도 부활을 비롯해 외국은행 국내지점 선물환 규제 강화, 은행부과금 도입 방안을 손질 중이다.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언론에서 언급된 은행부과금이나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부활 등을 다 고려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채권투자 과세 부활=가장 먼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게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외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행했던 외국인의 채권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세율 14%) 면세 조치를 폐지키로 이미 방침을 정했다.

 금융위원회는 만기 1년 미만인 단기채권에만 과세하는 방안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해외자본의 유출입을 줄이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재정부의 반론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결국 채권 만기에 따라 과세대상을 구분하지 않는 쪽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탄력세율(소득 규모에 따라 세율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도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면세 조치가 시작된 지난해 6월 이후 투자된 외국인 보유 채권에 대해서는 계속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소급과세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은행 규제도 검토=지난달부터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대한 선물환 포지션을 자기자본의 250%로 제한한 규정도 강화된다. 지난 6월 개정한 외국환거래규정은 분기별로 한도를 50%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정부는 내년 1월부터 125%까지 낮출 수 있지만 시장 충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부과금을 부여하는 방안은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세 문제를 각국 재량에 맡김에 따라 활동을 중단했던 은행부과금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다시 가동해 도입 여부와 부과 대상, 시기, 부과금의 활용방법 등을 재검토하고 있다. 신 보좌관은 “은행부과금제를 시행하면 비예금성 부채의 급증으로 부동산 대출이 과열되는 것을 제어할 수 있고, 전체 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본유출입 규제 장치가 도입된다는 전제 아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문가 예상이 늘어나고 있다. 이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G20 정상회의 일정을 피해 16일 개최된다. 환율 전쟁이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종식은 아니지만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을 점치는 시각이 큰 상황이다.

  그동안 G20 정상회의에 매달리느라 진척이 더뎠던 차명계좌 근절 대책이 본격 추진된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부처들은 조만간 이를 위한 본격적인 협의에 나선다. 금융위는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현행 금융실명제법을 개정하되, 가족 간 차명거래 등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하지만 차명계좌 규모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차명주식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난제여서 정부는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팀 개편될 듯=8·8 개각에서 유임된 주요 경제장관들은 내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3주년을 전후해 개편될 가능성이 크다. 인사청문회를 감안하면 청와대는 올해 정기국회가 끝난 뒤 곧바로 인선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 경제팀은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의 경제운용을 책임져야 한다.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의 교체가 점쳐지고 있다. G20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 대한 논공행상도 인사에 적잖은 변수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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