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엔 스머프, 내비엔 아톰 … 불황 땐 복고가 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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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다. 패션은 언제나 첨단을 지향한다. 그런데 ‘복고’가 자주 쓰이는 분야도 패션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 따른 생경함을 ‘옛것’이라는 친숙함으로 넘어선다. 최근엔 복고의 전선이 넓어졌다. 캐릭터에도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 만화 캐릭터들이 부활하고 있다. 스머프·아톰·헬로키티 등 고전적인 인기 캐릭터들이 정보기술(IT)·출판·유통 등 다양한 산업에 등장한다. 역시 ‘친근함’이 무기다. ‘그때 그 시절’ 캐릭터들이 돌아왔다.

고전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이름값을 한다. 캐릭터를 알리는 데 따로 돈 들일 필요가 없다. 홍보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 없다. 특히 이들 캐릭터는 실제로 돈을 ‘쓰는’ 계층인 20~30대에게 더 친숙하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마케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익숙한 캐릭터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부터 학습도서, IT 기기, 게임 등에서 고전 캐릭터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스머프’다. 스머프(Smurf)는 1958년 벨기에 만화가 피에르 컬리포드에 의해 탄생했다. 파파 스머프, 스머페트, 가가멜, 아즈라엘 등 개성 강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며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출간됐다.

이들 스머프가 LG전자가 출시한 스마트폰 ‘옵티머스원’의 TV 광고에 등장했다. 옵티머스원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나 애플의 ‘아이폰’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 성능은 둘째 치고 제품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기기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머프가 등장해 각각 고유한 캐릭터가 살아있는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스마트폰을 통해 바뀐 일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LG전자는 스머프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다채로운 스마트폰 라이프를 선보이는 ‘스머프앱’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스머프는 서점가에서도 인기다. 미래엔(옛 대한교과서)의 영·유아 출판브랜드 아이즐북스는 스티커북·워크북 등 3~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스머프 시리즈’ 책을 출간했다. 공간 개념과 집중력을 향상시켜 주는 퍼즐, 창의력을 높이는 학습 스티커북, 신나는 캐릭터송 및 스토리로 배우는 영어그림책, 지능 개발 워크북, 초등 저학년을 위한 코믹북 등 스머프를 활용한 다양한 캐릭터북 시리즈다. 심정민 아이즐북스 개발팀장은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스머프는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친근함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심 팀장은 “아이들은 TV 만화 채널을 통해 알고,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캐릭터라 스머프 학습도서를 찾는다”며 “스머프는 전 연령층과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스머프는 내년 여름 3D(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다.

스머프에 앞서 일찌감치 부활을 예고한 캐릭터는 아톰이다. 아톰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가 52년부터 68년까지 연재한 SF 만화 ‘철완 아톰’의 주인공이다. 한쪽으로 뾰족 쏟은 머리 스타일과 빨간 장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다. 50년대 단편 만화로 시작해 60년대 흑백 애니메이션, 80년대 컬러 애니메이션, 2009년에는 3D 캐릭터로 디지털 복원됐다. 내년이면 탄생 60주년을 맞는 아톰은 친근한 매력으로 만화 캐릭터를 넘어서는 문화 아이콘이 됐다. 코리안 팝아트의 대표 작가인 이동기는 94년 ‘리모트 컨트롤전’에서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쳐 놓은 ‘아토마우스’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아톰은 올해 초 내비게이션 업체 파인디지털의 광고 모델로 선정됐다. 파인디지털이 출시한 신개념 3D 내비게이션은 단순히 건물만 3D가 아니라 전국의 산과 들의 실제 높이를 3D로 나타낸다. 일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보다 100배 빠른 ‘터보GPS’, 자동으로 무선 업데이트되는 ‘데이터 퀵 서비스’ 등도 탑재했다. 파인디지털 측은 “강력하고 빠른 로봇을 표방하는 아톰이 제품 특징과 맞아떨어지고 제품의 주요 구입자인 20~30대층에게 친숙한 캐릭터라 모델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파인디지털 내비게이션은 아톰 광고에 힘입은 덕에 올 들어 3분기까지 742억원(누적)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은 8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톰은 최근 아이폰 게임으로도 출시됐다. 일본 데즈카 프로덕션과 와이드포스·세중게임즈가 손잡고 개발한 ‘아스트로보이 탭탭 러시(Astroboy Tap Tap Rush)’는 ‘마음’을 가지게 된 로봇 아톰이 폭주한 로봇들에 맞서는 과정을 게임으로 구현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능을 넣어 게임을 즐기면서 스마트폰 이용자끼리 대화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테디셀러 ‘헬로 키티’도 가세했다. 최근엔 IT 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뉴엘이 출시한 ‘미뉴 A10 헬로키티 PC’는 모니터·본체·글자판을 모두 헬로키티로 디자인했다. 삼성전자의 MP3플레이어 ‘옙’도 최근 ‘U5 헬로키티’ 제품을 선보였다. 기존에 출시한 ‘옙 U5’ 모델에 헬로키티 디자인을 곁들였다. 액정화면에 고양이·양 등 다양한 캐릭터 아이콘을 설정하는 ‘팝아트 아이콘’ 기능을 추가했다. 외장 하드디스크 케이스나 USB 메모리 제품에도 헬로키티 디자인은 꾸준히 쓰이고 있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역시 최근 문화계를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다. 도라에몽은 73년 일본 첫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35년간 TV에서 방영된 장수 캐릭터다. 올여름에는 도라에몽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상연돼 인기를 끌었다. ‘내 친구 도라에몽’이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원작 캐릭터를 100% 재현해 아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고전 캐릭터까지 인기를 끌면서 캐릭터 라이선싱 시장의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라이선싱산업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캐릭터 라이선싱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9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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