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이광재ㆍ김두관 지사의 변신, 평가는 지금부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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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10면

그들은 변신하고 있었다. 말뿐 아니라 발걸음에서도 진화의 노력은 묻어났다. 이광재(민주당) 강원도지사와 김두관(무소속) 경남도지사 얘기다. <본지 10월 3일자 3면, 11월 7일자 3면·사진>

88 서울올림픽 반대데모에 앞장섰던 이 지사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대기업을 적대시하던 그가 이젠 이건희(삼성전자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수시로 만나 전략을 숙의하고 있다. “난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는다”며 탈이념 선언도 했다.
농민운동 하다 남해군수가 된 뒤 기자실 폐쇄에 앞장섰던 김 지사도 “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 언론의 합리적 비판을 모두 수용하고 가겠다”며 180도 탈바꿈했다. “평생 비주류로 살았지만 이젠 도민들로부터 당당히 선택받은 주류”라며 자신의 정체성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무엇이 그들을 변신하게 했는가. 두 지사의 대답은 이랬다. “과거의 이념과 집착을 떨쳐버리고 철저히 현실에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도민들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도지사로서 가야 할 길이 자연스레 보이더라는 거다.

이 지사는 취임 후 하루 세 번 도청 직원들을 따로 만난다. 아침엔 과장 한 명과 공지천을 걷고, 도청으로 돌아와선 국장 한 명과 아침밥을 같이 먹는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엔 계장들이 모여있는 생맥주집에 들러 얘기를 듣는다. 만나는 직원은 매일 바뀐다. “부담 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얘기가 진짜 생생한 참고서”라는 지론에서란다. 여기서 얻는 아이디어로 도민밀착형 정책을 내놓으니 반응이 나쁠 리 없다.

김 지사는 스스로를 ‘군내파’로 부른다.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외국 유학을 오래했던 한 의원이 “김 장관은 국내파시군요”라고 하자 “국(國)내파도 아니고 군(郡)내파요”라고 답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고향 남해군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던 그는 실제로 외국에 나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지사가 된 뒤엔 한 달에 두세 번씩 해외로 나가고 있다. 도내 기업들의 수출 지원이 주된 출장사유다. “경남도와 도민의 번영을 위해 도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념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두 지사의 다짐은 오랜 실전경험과 시행착오에서 비롯
됐다. 이 지사는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거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강원도지사 출마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곤 바닥 민심 잡기에 올인했다. 시골 마을회관에서 숙식하며 동네 어르신과 아주머니들의 애로사항을 적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3당(식당·서당·경로당) 정책’을 내놨다. 일자리·교육·복지 문제를 구체화한 정책에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도민들도 마음을 열었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세 번, 도지사 선거에서 두 번 낙선했던 김 지사가 5전6기에 성공한 이면에도 생활밀착형 행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낡은 이념의 구호를 벗어던지고 유권자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면서 생존의 기술을 터득했다. 손에 잡히는 정책은 간 데 없고 구호만 난무하는 중앙정치와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이제 초점은 ‘변신, 그 이후’에 맞춰지고 있다. 진화와 성찰이 꾸준히 계속될지, 밑바닥을 훑는 성실함이 유지될지가 관심사다. 4대 강 사업을 놓고 도내 대다수 시장·군수들과 대립하고 있는 김 지사가 어떻게 도민들 의견을 수렴해갈지도 주목거리다. 변신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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