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인요양센터 불 … 10명 사망 17명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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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2일 새벽 화재로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경북 포항시 인덕동의 여성 노인 전용 요양시설인 인덕노인요양센터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경북도소방본부·전기안전공사 합동으로 화재 감식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전기 합선에 의한 화재로 추정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시커먼 연기로 전혀 볼 수 없었어요. 다리가 불편해 방을 기어 다니다 소방관이 들어와 살았지요.”

 12일 경북 포항시 인덕동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조연화(77) 할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날 새벽 불이 난 요양센터의 내부는 흉측한 모습이었다. 발화 지점인 1층 사무실에는 불에 탄 의자와 집기가 뒤엉켜 있었다. 가구와 천장 등이 불타고 유리창도 깨져 있었다. 사무실 옆 환자들이 생활하는 1호실과 2호실의 침대 등도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경찰은 오전 4시10분쯤 요양센터 1층 사무실에서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야간근무를 하던 요양보호사 최모(63·여)씨는 사무실에서 불이 난 것을 목격하고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1호실에 있던 김송이(86)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이던 중 고함소리가 들리고 목이 따가워 불이 난 줄 알았다”며 “내가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최씨가 들어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말했다.

 불은 2층짜리 요양센터 건물 387㎡ 중 1층 사무실 16.5㎡를 태우고 30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희생자가 많은 것은 대부분 70∼90대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요양센터 1층에는 치매나 중풍 환자인 중증장애 할머니 11명이, 2층엔 경증장애 할머니 16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1층에 있던 11명 중 10명이 숨졌다. 이들이 머물던 방은 출입문에서 5∼1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혼자 대피할 수 없어 유독가스에 질식해 희생됐다.

 화재 신고가 늦어진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다. 화재를 발견한 요양보호사 최씨가 당황한 나머지 119로 신고하지 않고 요양센터 옆 포스코기술연구소 경비실, 맞은편 인덕빌라 관리사무소를 찾아 신고를 부탁한 것이다. 포스코기술연구소의 경비원은 오전 4시15분쯤 포스코의 사내 소방대에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대는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다 오전 4시24분쯤 포항 남부소방서에 신고했다. 화재 발생 시각에서 14분 지나 소방서에 신고된 것이다. 김대진 남부소방서장은 “최씨가 화재 발견 즉시 119에 신고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층에 여성 한 명씩만 야간 관리자로 근무한 것도 문제다. 화재 등 비상시에 많은 환자를 신속하게 대피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최동해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차려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사무실의 전기 개폐장치 등이 있는 분전반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최씨의 말에 따라 전기 합선에 의한 화재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요양센터 원장인 이모(66)씨를 상대로 시설의 운영상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포항=홍권삼 기자

인덕요양센터 인력·시설은

▶ 인력 : 9명(원장·사회복지사·간호조무사·조리원 1명씩, 요양보호사 5명)=기준 충족

▶ 비상경보·비상방송·자동화재탐지설비 등 미설치(작은 건물은 설치하지 않아도 됨)=기준 충족

◆사망자 명단 ▶김분란(84·부산시 재송동) ▶양정석(87·포항시 상도동) ▶장후불(73·포항시 동해면) ▶정귀덕(78·포항시 오천읍) ▶김복선(83·포항시 지곡동) ▶김송죽(90·포항시 오천읍) ▶형순연(81·포항시 학잠동) ▶김희순(71·포항시 오천읍) ▶권봉순(95·포항시 창포동) ▶정매기(95·포항시 호미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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