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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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시간의 파괴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시간의 파괴력에 저항할 수 없을뿐더러, 어쩌다 벌어지는 부질없는 저항은 오히려 웃음거리나 빈정거림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체념한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운명을 허무라 이름하여 슬퍼하고 한탄해 왔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염세와 비관의 노래는 대개가 그런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속절없는 인식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 삶은 너무 고달프고 분주하여 우리 존재가 타고난 허무에 골몰할 틈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범속한 일상에 허덕이면서, 또는 놀기 위한 놀이에 빠져 시간의 파괴력을 잊고 지낸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야 놀라 돌아가야 할 집을 떠올리는 아이처럼, 시간이 우리의 마지막 숨결을 끊어놓으려 할 때에야 비로소 슬픔과 두려움 속에 그 파괴력을 절감한다.

 어찌 보면 티끌 자욱한 속세의 소란과 일상의 번잡은 시간의 파괴력을 잊게 하는 몽혼약(<66DA>昏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몽혼과 마취의 순간에도 그것을 온전히 잊지는 못한다. 우리에게는 뒤돌아보는 습성이 있고, 그 습성은 변화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파괴의 과정을 어쩔 수 없이 알아보게 한다.

 모든 변화는 그때껏 진행된 파괴 과정의 한 단락이다.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보는 일이 언제나 우리에게 쓸쓸함을 자아내는 것은 그때까지의 변화 속에 스며 있는 사멸과 종말의 예감이다. 오랜 세월 뒤에, 한때 머물렀던 땅 또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일은 시간의 파괴력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 ‘살이’의 부질없음이나 허망함을 다시 한번 곱씹는 일이기도 하다.

 체호프의 연극들이 자주 의지하는 정조(情調)는 그와 같은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속절없는 인식 또는 돌아보는 쓸쓸함이다. 집착은 그리움의 다른 말이며, 사라진 과거, 사라진 영광에 대한 집착은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부질없는 저항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부질없기에 우리에게 더 깊은 연민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와 달리 시간의 파괴력에 무력하게 자신을 맡겨 처연한 변화의 잔해로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벚꽃동산’의 라넵스카야나 ‘갈매기’의 니나의 삶이 우리에게 애틋한 감동을 주는 것은 어쩌면 그녀들이 보여주는 그 두 가지 상반된 대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내가 연극 연출을 지망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작품 목록의 맨 앞에는 체호프가 있었다. 읽는 희곡으로서도 빼어난 극본의 특질 말고도 돌아보는 쓸쓸함을 주조로 감수성에 호소해 오는 서사 구조가 이십 대 초반의 나를 사로잡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와 함께 시건방져지고 뒤틀리면서 그 목록들은 아서 밀러나 테네시 윌리엄스를 거쳐 자극적인 현대극이나 부조리극으로 대치되어 갔고, 결국은 그것들이 내 초기 연출 목록이 되었다.

 그러다가 마흔이 다 되어 어느 날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듯 체호프로 돌아가 연출하게 된 것이 ‘벚꽃동산’이었다. 그러나 연극 연출로서 내 ‘벚꽃동산’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할리우드 액션에 중독된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대했던 중년층까지도 호응이 없어 흥행은 진작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진지한 고전극 매니어층의 반응도 신통치 않아 그 공연은 결국 적자를 겨우 면한 태작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벚꽃동산’을 앞당겨 막 내린 지 석 달도 안 돼 나는 다음 작품으로 다시 ‘갈매기’를 하고 싶어졌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로서는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체호프로의 귀환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한번 혜련을 내 주변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작품으로 ‘갈매기’를 선택하면서 나는 거의 동시에 헌팅턴 하이스쿨 연극반에서 ‘갈매기’를 해보았다고 하던 혜련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도 음악을 거들었는지 연기를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갈매기’를 연출한다면 음악은 헤련이 맡아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세요?”

 내가 전화를 하자 혜련이 왠지 원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한낮인데, 전화선 저쪽 끝에 있는 부스스한 머리칼과 약간 부기 있는 얼굴을 떠올릴 지경이었다. 뭔가 좋지 않구나, 나는 그런 예감을 감추기 위해서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난번 ‘벚꽃동산’ 보러 왔지? 어땠어? 왜 말 안 해줘?”

 “그거 벌써 몇 달 지난 얘기잖아요? 갑자기 무슨 리뷰예요?”

 “그럴 일 있어. 솔직히 말해 봐. 나의 체호프 해석, 제대로 된 거 같아 보였어?”

 그러자 혜련도 애써 낸 듯한 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 언니 라넵스카야 연기는 완벽했죠. 나 울었어요.”

 “뭐, 감동해 운 사람 같진 않은데. 그건 그렇고. 어이, 너 나하고 다시 체호프 한 편 해보지 않을래? 갈매기….”

 “갈-매-기요?”

 한참 대답이 없다가 그렇게 띄엄띄엄 대답했다. 놀랍다는 기분과 뜻밖이라는 기분이 적당히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변호하듯 말했다.

 “그래. 지난번 ‘벗꽃동산’ 이래저래 버벅거린 곳이 좀 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될 것 같아. 특히 갈매기는 내가 연출 시작할 때 반드시 해보고 싶다고 손꼽아둔 네 개의 작품 가운데 하나야. 어떤 사람은 순서가 바뀌었다고 할 테지만 ‘벚꽃동산’은 연습이었는지도 몰라.”

 “전에 ‘크루서블’도 반드시 연출해 보겠다고 손꼽아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하시더니, 그럼 갈매기까지 그중 절반을 제가 들은 셈이네요. 나머지 둘은 뭔데요?”

 “그건 그때 가서 또 말해 주지. 어쨌든 나하고 다시 한번 같이 해볼 거야? 말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여유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나도 농담기 말투로 물었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축 처지며 감정 없이 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저예요? 나는 체호프를 특히 눈여겨 살핀 적도 없는데….”

 “전에 고등학교 때 ‘갈매기’ 해본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왜 부산서, ‘리투아니아 남자들’ 음악 지원할 때 말이야.”

 “아 그거, 그야말로 고등학교 때잖아요? 하도 써먹을 경력이 없어 둘러댄 건데… 거기다가 그때는 음악을 한 게 아니고….”

 “하지만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는 것도 있잖아? 아마 네가 참여한 첫 번째 연극일 텐데, 남다른 감회가 있지 않겠어? 게다가 우리 헬렌 킴 감독님 연륜도 그만하면 고전극 한번 때릴 때도 됐지 않아?”

 나는 계속 농담 조를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반짝 활기를 가장하던 헤련의 목소리는 점점 더 사그라지는 듯했다. 가벼운 한숨소리까지 들키며 힘들여 말을 받았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럽네요. 내게 새로 한 작품 시작해 그걸 마치고 갈 여유가 있는지도 모르고….”

 “가다니 어딜 가? 어디 멀리 갈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내가 그렇게 받고 보니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래, 어딜 가는 거야? 언제 떠날 건데? 어디로, 뭘 하러 가는 거야?”

 내가 연달아 그렇게 묻자 혜련이 손사래를 치듯이 말꼬리를 뺐다.

 “아뇨, 아뇨. 내가 당장 어딜 간다는 것은 아니고, 말하자면 그럴 시간이 있겠느냐는- 뭐 그런 말이죠. 사실 저 요즘 좀 복잡한 일이 있어요. 바쁘기도 하고… 어쨌든 생각해 볼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한번 발동된 내 상상력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야 인마, 내 모를 줄 알아? 너 지금 빈 집에서 머리 싸매고 누웠지? 그래서 자다가 벨소리 듣고 비몽사몽간에 전화 받은 거지. 어젯밤에는 술 한잔 걸치고.”

 “이젠 별 상상 다 하시네. 어디 돗자리 깔고 도사로 나앉으시기라도 할 작정이세요? 그런 게 어딨어요? 감기 기운이 있어 좀 쉬고 있는 사람보고….”

 하지만 이번에도 혜련이 자리까지 털고 일어나 정색하는 모습까지 떠오를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내가 직접 그걸 본 듯한 자신감으로 혜련을 다그쳤다.

 “몽서방 바꿔. 너희 몽영감. 우선 그 사람과 통화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

 몽서방은 내가 혜련의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에게는 정마무개란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몽골리안에서 몽을 따와 그를 그렇게 불렀다. 혜련도 가끔씩 그를 우리 몽영감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특히 그를 그렇게 부를 때는 표정까지 환해지는 기색이었는데, 그날은 영 아니었다.

 “김 교수는 왜요? 화요일 열한신데 전임강사가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어떡해요? 그 사람, 지금 학교 나갔어요.”

 몽서방을 김 교수라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차가움이 묘한 자극이 되어 나는 느닷없는 열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잠깐 나와. 내 그리로 갈 테니. 근처에 어디 괜찮은 식당 없어? 정말 감기로 누워 있었다면 내 맛있는 것 사주지. 그리고 거기서 잠시 얘기해. 무엇이든. 나오지 않으면 내가 너희 아파트로 갈 거야.”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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