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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끔찍한 피붙이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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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위나 며느리라면 모를까, 젊은이들이 집안에서 제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으로 깍듯이 높여 부르는 일은 흔치 않을 듯하다. 웬만해선 듣기 힘든 그 귀한 존칭을 이즈음 집 밖에서 자주 듣게 된다. 시장이나 백화점의 매장에 들어서면, 생전 처음 보는 업주와 점원들이 다가와 아버님, 어머님을 되뇌며 알뜰살뜰 모신다.

 그뿐이 아니다. 중년이면 죄다 3촌뻘인 아저씨, 아주머니고, 어르신들은 모두 2촌인 할머니, 할아버지다. 젊은이들끼리는 스스럼없이 형, 동생, 누나로 통한다. 예전엔 남편을 아빠라고 불렀는데 요즘엔 오빠로 부른다. 누가 “오빠”하고 부르면 남편과 친정오빠가 동시에 대답을 해야 한다. 촌수도 근친윤리(近親倫理)도 모두 뒤죽박죽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3촌 이내의 핏줄인 셈이니 오죽 좋은 일인가.

 외국의 젊은이들이 처음 보는 노인을 할아버지(grandpa), 할머니(grandma)로 부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을 오니상(お兄さん, 오빠)으로 부르는 일본 여성도 있을 성싶지 않다. 모든 인간관계를 몽땅 가족관계로 환원시키는 우리의 유별난 호칭 습관은 생면부지의 타인도 제 피붙이처럼 여기는 따뜻한 마음씨에서 비롯된 것일 터인즉, 이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호칭의 관습이 실제의 인간관계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점원이 ‘어머님’과 흥정을 하고 실랑이를 벌이는가 하면,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는 세상이다. 아내와 ‘오빠’가 남남으로 갈라서는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다. 극단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나누는 ‘피붙이 호칭’은 골 깊은 분열상을 감추려는 기만(欺瞞)의 언어, 위선의 수사학(修辭學)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식 둔 골짜기는 범도 돌아본다지만, 우리네 피붙이 사랑은 끔찍하리만치 각별하다. 높은 교육열로 국가발전의 토대를 이뤄낸 반면에, 가진 자들의 옹졸한 가족이기주의는 그러잖아도 고단한 민초(民草)들의 삶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빈부(貧富)가 고스란히 세습되는 사회풍토도 서러운 터에, 장관과 국회의원의 아들딸들이 선망(羨望)의 공직에 ‘특채’되어 서민들을 울리는가 하면, 심지어 부유한 대형 교회들의 강단마저도 세습의 목록에 올라 있을 정도다. 그들이 따른다는 예수님은 나중에 대사도(大使徒)가 된 동생 야고보를 미리 부르지 않고, 아무 혈연이 없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교회를 이끌게 했건만(마태 16).

 공동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피붙이 사랑은 선(善)이 아니라 죄악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긴 이름에서 하필이면 권력세습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단어인 ‘조선’왕조를 따랐는지, 선군(先軍)의 나라에서 군복무 경험도 없는 20대 손자가 하루아침에 대장의 반열에 올라 65년 절대권력을 3대째 이어가는 중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사상리론과 령도예술의 천재이시고··· 위대한 인간이시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북한 헌법, 그 서문의 일부다. 우주선으로 별들을 왕래하는 21세기 대명천지에 이토록 기가 막힌 판타지의 세계가 또 있을까. 전 독일 국민이 ‘히틀러 만세(Heil Hitler)’를 외쳐야 했던 나치시대에도 히틀러의 호칭은 단지 지도자(F<00FC>hrer)였을 뿐이다. 그 희대의 광인(狂人)도 차마 ‘게르만 민족의 태양’까지는 넘보지 못했다.

 아무리 ‘민족의 태양’이 떠 있는 땅이라지만, 부자손(父子孫)이 대대로 권력을 세습하는 사회주의는 세상에 없다. 종주국에 세자책봉을 주청(奏請)하는 ‘주체’의 나라도 지구상에 없다. 사이비 사회주의, 정신나간 주체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유, 민주, 인권은 문명사회의 보편적 가치다. 그것을 외면하는 진보는 이념에 대한 모독일 따름이다. 반(反)문명적 봉건세습체제를 ‘북녘조국, 사상의 조국’으로 부르면서 엉뚱하게도 진보를 자처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지만, 그 수상쩍은 침묵이 도리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북의 신성가족(神聖家族)이 보여주는 저 ‘끔찍한 피붙이 사랑’이 행여 2400만 북한 동포에게 끔찍한 불행을 안기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핏줄을 앞세운 ‘우리 민족끼리’의 구호가 살갑게만 느껴지지 않듯이, 거리에서 오고 가는 아버님, 어머님의 피붙이 호칭도 그리 정겹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