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더 나은 한국살이 위해 힘 모을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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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포털사이트인 '다음'이나 '싸이월드'에 가입할 수 없는 게 가장 불편해요. 한국인 친구도 사귀고 문화도 배우려면 제일 좋은 방법인데…. 그래서 외국인 학생들은 안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칠 필요가 없는 어린이 자격이나 한국 친구 이름으로 가입하는 편법을 써요."

서울대 인문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미국인 여학생 리사 위터(22)는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끝도 없이 털어놓았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서러움도 그 중 하나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돼 한국 사람은 3500원만 내면 감기 치료를 받는데 유학생은 3만원이나 들어요. 그래서 웬만큼 아파선 병원엘 안가요."

위터는 이런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가고자 지난달 29일 유학생 친구들과 뭉쳐 'KISA(Korea International Student Association)'란 단체를 만들고 회장을 맡았다. 이미 서울대 유학생 40여 명을 포함해 50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국내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이 1만6832명(2004년 기준)이나 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해 전국 규모의 단체로 키울 계획이다.

"다들 똑같은 문제로 꿍꿍 앓고 있었나 봐요. 얼마 전 이화여대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예상 외로 큰 호응을 얻었죠."

위터는 KISA의 1차적 목적이 외국인 유학생들의 권리찾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권리만 부르짖으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봉사활동도 펼칠 계획이다. 우선 올 가을 한국에서 열릴 '국제적십자 연맹총회'에서 번역과 안내를 맡기로 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돕거나 고아원을 방문할 계획이다. 위터는 "우리도 엄연히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니까 봉사는 당연히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위터는 어린 시절 아버지(언론인)를 따라 일본에 살다가 13세 때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한국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일본에 비해 깊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정이 많고 솔직한 한국인들의 품성도 맘에 들었어요."

한국을 잊지 못하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1년 한국에 와 1년반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내친 김에 서울대에 진학했고 장차 동양사학을 전공하기 위해 현재 '동양사 입문' '동아시아 성립과 발전' 등의 과목을 듣고 있다.

한국인 뺨칠 만큼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지닌 위터는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다"며 "아무래도 한국이 내 나라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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