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0년] 대구 가스폭발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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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달서구 상인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정덕규(오른쪽) 유가족 회장 등 유족들이 기념비를 닦고 있다. 유족들은 “10년 동안 백서 한 권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8일로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10주기를 맞는 4.28 유족회는 추도식 준비로 바빴다. 정덕규(54) 유족회장은 "회원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 올해까지만 추도식을 열기로 했다"며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 착잡하다"고 말했다.

10년 전 이날 오전 7시52분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285㎏짜리 복공판이 50m나 튀어오르는 위력이었다. 이 사고로 영남중 학생 43명 등 101명의 사망자와 202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그날 등굣길에 중.고교생 자녀를 잃은 40.50대 학부모들은 참사 이후 새 생명을 잉태하기로 마음 먹었다. 죽은 자식을 잊고 희망을 키우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아들을 잃은 51가족 중 11명의 유족이 정관 복원수술을 했다. 이들 모두 새 생명을 얻었다. 모두가 외아들을 잃고 상심하던 때 아들 9명과 딸 2명을 새로 낳았다. 쌍둥이를 잃은 가족도 새 아들을 얻었다. 이들 자녀 11명은 1996~98년생으로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유족들은 다시 같은 학부모가 돼 자주 만나고 있다.

"숨진 자식의 친구들이 고교로, 대학으로 진학할 때 먼저 간 자식 생각이 더 간절해집디다."

한 유족은 "교복 사주고 대학입시 뒷바라지해 줄 자식이 없기 때문"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같은 고통 속에서 꿋꿋이 일어선 유족도 있다. 경찰관 아버지를 잃은 한 유족은 최근 오빠가 박사학위를 받고 여동생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참사 이후 생활이 나아진 집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만큼 유족들은 10년 세월 동안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지는 등 가세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4년 전 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괴로워하며 술을 마신 뒤 기찻길에 뛰어들어 숨져 큰 충격을 던졌다. 그 아버지는 5~6년간 세상을 원망하며 술을 마시느라 가산마저 탕진했다.

또 어떤 이는 사고 이후 괜찮던 사업을 몇 번씩 바꾼 뒤 실패를 거듭하다 택시기사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유족들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유족이란 이름으로 위로받고 싶지 않아 유족회에 나오지 않는 회원들도 많아졌다. 그래도 유족들은 10년 동안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위령탑을 찾고 있다.

정 회장은 "안전 불감증보다 더 무서운 건 망각"이라며 "10년 동안 백서 한 권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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