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 환율 전쟁 사이 미 연준 ‘조심스러운 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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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조심스러운 줄타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6000억 달러짜리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를 놓고 시장에서 나오는 평가다. 연준의 줄타기는 경기부양 기대와 환율 전쟁에 대한 우려 사이에서 시작됐다.

 연준은 내년 6월까지 매달 750억 달러씩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돈을 풀 예정이다. 물량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절키로 했다. 사들일 국채의 90%가 2년반~10년 만기 장기채다.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틀간의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목표 금리는 종전과 같은 0~0.25%로 동결했다. <관계기사 e2, e3면>

 6000억 달러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화끈한 경기부양을 기대한 국내시장과, 달러화 약세를 우려한 해외시장의 시선을 절충했다는 뜻이다. 우선 시장의 평균 기대치인 5000억 달러를 20% 초과한 규모다. 여기에다 덤도 얹었다. 기존에 연준이 보유한 채권 중 만기가 닥친 2500억~3000억 달러어치에 대해서도 재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론 8500억~90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사들이는 셈이다. 연준으로선 경기부양 의지를 시장에 내비친 셈이다.

 그러나 이는 해외에서 우려한 ‘돈 폭탄’(1조~2조 달러)엔 못 미친다. 연준이 달러를 많이 풀면 달러 값은 떨어진다. 이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는 물론 한국과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를 일제히 밀어올린다. 갑작스러운 환율 절상을 막기 위해 각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잠잠해진 환율 전쟁이 재발하는 셈이다.

 연준이 6000억이라는 ‘애매한’ 숫자를 택한 데는 이 같은 고민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줄타기에 비판적 시각도 있다. 경기부양과 환율안정이라는 양쪽 눈치를 다 보려다 보니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6000억 달러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어쨌든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이제 공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으로 넘어갔다. 연준을 따라 양적 완화에 동조하느냐, 아니면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이냐 선택해야 한다.

 각국 금융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4일 코스피지수는 해외 투자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날보다 6.53포인트(0.34%) 상승한 1942.50으로 장을 마쳤다. 2년11개월 만의 최고치다. 시가총액도 1077조2247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3일(현지시간) 미국 다우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 0.24% 오르며 마감했다. 영국·독일·프랑스 증시는 소폭 하락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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