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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혁명가’ 돼야 지구촌 리더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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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 세계 인구 60억 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애플 ‘아이폰’이나 삼성전자 ‘갤럭시’ 같은 고급 기종만 생각해선 안 된다. 외국에는 커피처럼 자판기에 돈을 넣고 꺼내 쓸 수 있는 간단한 휴대전화기도 있다. 이런 설명까지 덧붙여도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유엔이 최근 내놓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세계 휴대전화 이용자는 50억 명에 이른다. 이 정도면 휴대전화는 가히 인류 역사상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사용하게 된 최초의 대중적 통신기구라 할 수 있겠다. 모토로라가 1973년 처음 휴대전화 기술을 발명한 이래, 가장 빨리 지구촌에 보급된 기술이라는 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1200만 명이던 휴대전화 이용자가 현재는 지구촌 인구의 절대 다수가 된 사실이다.

 아시아·아프리카 등 오지에 인터넷을 보급해 정보화 격차를 줄이겠다는 국제적 노력은 2000년 들어 ‘인터넷이 아니라 전화나 팩스를 더 필요로 하는’ 현실을 감안해 흐지부지됐다. 좋은 컴퓨터를 무상으로 지원하더라도 주민들의 지속적 흥미를 이끌어낼 생활서비스가 따라가지 않으면 목소리를 듣는 전화나 눈으로 보는 팩스가 e-메일보다 훨씬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휴대전화는 각국 정부가 앞장서 보급을 촉진하지 않았는데도 그 편리함으로 인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연결은 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가난한 나라의 오지 마을에서도 무선인터넷을 통해 병원에 가지 않고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등 응급진료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빠른 데이터 수집을 통해 질병 확산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유엔이 199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모바일 전자의료(m-health)’ 서비스 또한 전 세계에 확대 보급할 수 있게 했다. 정보기술(IT) 혜택을 통해 2015년까지 개발도상국 국민의 절대 빈곤과 기아를 퇴치하려는 프로젝트에도 휴대전화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스스로도 다자간 원조를 지원하는 국제개발은행에, 사회 기간망이나 전자정부 같은 공공 분야보다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민간부문의 경제 활성화 지원을 더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경우 핀란드의 세계 최대 휴대전화업체 ‘노키아’가 주도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아 휴대전화를 이용한 농업·교육·의료·금융 분야 서비스 확대와 자문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개도국 IT 원조를 위해 특별기금을 국제개발은행들에 설치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격에 걸맞도록 공적개발원조(ODA) 출연금을 늘리고 대륙·국가별 전략적 원조 분야 선정 등의 중장기 전략을 발표하며 국제적 리더십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IT를 통한 원조를 이끌고 나갈 힘은 궁극적으로 민간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제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들의 지속적 참여가 필수적인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휴대전화를 통한 선진화 자문으로 포장된 노키아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 역시 결국 목표는 시장 개척의 교두보 역할을 할 기술자문센터 설립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굳이 개도국 시장 공략을 의도하지 않는 인도적 차원의 IT 지원이 목표라 해도, 우리가 산업·경제적 노하우를 제공할 정도로 활성화된 시장·서비스·기술을 축적하고 있는가를 꼼꼼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애플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쇼크’에 허둥대고, 사회적 요구가 가장 큰 모바일 의료 서비스 또한 전통 의료법에 막혀 보여줄 게 별로 없는 상황이라면,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IT로 기여할 수 있는 몫이 과연 얼마나 될지 고민해야 한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