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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시시각각

부자감세, 지금 결판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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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단은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의 판정승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부자감세’ 이야기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대변인의 말실수’로 정리할 모양이다. 대통령실장과 정책실장까지 “감세엔 변화 없다”며 지원사격 했다. 이대로 봉합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시작인 느낌이다. 부자감세는 표현 자체가 휘발성 강한 정치적 사안이다. 야당은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구도도 복잡하다.

 전화기 너머로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 목소리는 애가 탔다.

 -또 평지풍파를 일으켰는데.

 “지역구를 돌아보면 모두 상처 받고 겁에 질려 있다. 부자감세를 하면 다음 선거에 분명히 진다.”

 -왜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감세 철회 문건을 전달했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웃는 얼굴로 ‘천천히 읽어볼게요’라고 하더라.”

 -강 특보와 입장 차이는 좁혔나.

 “그에게 감세 귀신이 들렸나…나는 도무지 이해 안 된다.”

 -이대로 정리되는 것인가.

 “의원총회가 열리면 반드시 다시 붙겠다.”

 그의 근심이 기우(杞憂)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일본·영국·네덜란드의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 중간선거도 야당인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독일·호주·북유럽 국가만 재집권에 간신히 성공했다. 숨어있던 유권자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친박 진영은 여전히 말조심 강조 주간이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혜훈 의원은 전화 통화에 신중했다.

 -‘줄푸세’ 공약은 감세 아닌가.

 “감세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당시는 경제위기 이전이었다.”

 -따뜻한 보수, 복지에 방점을 찍으면서 미묘한 변화가 느껴지는데.

 “우리의 감세 대상은 중산층과 서민이다. 처음부터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아니었다.”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찬반 의견을 밝힐 가능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나중에 대선 국면이면 몰라도….”

  감세론자인 강 특보는 국가경쟁력위원장이다. “국제적 수준으로 세율을 내려야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경제가 성장한다.” 이미 감세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도 사실이다. 고(高)환율과 감세를 양 날개 삼아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났다. 한국은 신용등급까지 올라간 흔치 않은 나라가 됐다. 강 특보는 “대통령 공약을 특정 정치인이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은 감세 진영의 승리로 단정 짓기는 성급하다. 불씨는 잠복했을 뿐이다.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의 흐름부터 심상찮다. 부자감세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이러다 다 죽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부자 동네인 강남 지역 의원들까지 슬그머니 동참하는 분위기다. 국회 기획재정위 의원들 조차 감세 철회가 절반을 넘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는 논쟁을 내년으로 넘길 모양이다. 굳이 지금 부담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포퓰리즘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수도권 의원이나 친박 진영이 야당의 감세 철회에 동조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미룬다고 청와대와 정부에 정치 지형이 결코 유리해지지 않는다. 어물쩍 넘기다간 제2의 세종시로 변질될 수 있다.

 부자감세 논쟁은 경제성장과 복지, 재정건전성이 맞물리는 국가적 중대 사안이다.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각 정파 간에 잠재된 노선 차이도 분명하다. 그런데도 감세 논란은 사흘 천하로 끝났다. “청와대 전화 한 통에 오락가락”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무성한 뒷담화만 남긴 채 덮여버렸다. 그러나 덮는다고 덮일 게 따로 있다. 언젠가 더 크게 불거질 게 뻔하다. 차라리 지금 당장 분명한 입장들을 내놓고 결판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미룰 일이 아니다. 홍역은 평생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