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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입' 9년] 3. 전용차 동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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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해 생도들을 사열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일행이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로켓 시험발사를 관람한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이후락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행원은 해변가로 나가 쉬면서 그간의 피로를 풀었다. 나는 혼자 남아 방미 결산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박 대통령이었다. 그것도 혼자서였다. 나는 당황하여 일어섰다. 박 대통령은 "모두가 해변가로 나가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당신은 여기 혼자 남아 무엇을 하고 있소"라고 말을 걸었다. 머뭇거리자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드라이브나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 떨어진 행운인가.

그리하여 대통령 전용차에 단 둘이 몸을 싣고 일대를 드라이브하기 시작했다. 경호원들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고, 차 앞에 꽂혀있던 깃발도 다 가리도록 했다.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미국 사람들의 생활상에 관해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나의 직업의식이 그것으로 만족할 리 없었다. "미국 방문 중 가장 인상적인 때가 언제였습니까." 제1탄을 날려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박 대통령은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야"라고 답했다.

"사관생도들의 젊고 활기찬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고, 내가 학교를 떠날 때 연병장에 도열한 생도들이 일제히 모자를 벗어 하늘 위로 내던지면서 환호성을 지를 때 참으로 감동적이었어."

박 대통령 자신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감동적이었으리라 싶었다. 박 대통령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 어디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저 푸른 숲 말이야. 저것 참 부러워. 미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다면 난 저 푸른 숲을 몽땅 가져가고 싶어."

이 혁명가는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점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거꾸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백악관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불편할텐데 어째서 그곳에 계속 눌러있는가였다. 마침 얼마 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誌)에 백악관에 관한 특집이 게재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죽 설명을 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주거지일 뿐만 아니라 정치와 국제외교의 중심지라는 주요 기능이 있으며, 이것 외에도 미국의 역사적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적 기능이 있고 이 때문에 국내외 인사들에게 관광지로서의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역사적 기능'과 '박물관적 기능'에 대해 잘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백악관 속에는 이른바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이것을 국민이 와서 보고 느낌으로써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항상 굳건하게 국민의 가슴에 자리잡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다시 차창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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