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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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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일 오후 기자의 책상 위로 『왜 도덕인가?』라는 책이 전달됐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명사가 된 미국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미국에서 2007년 출간(개정판, 초판은 2005년)된 『왜 도덕인가?』는 이미 3주 전부터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출간을 예고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예약 주문을 받은 것이다. 초판을 3만 부 찍었다. 소설도 그 정도 팔리면 대단한 수준이다. 인문학 책이 초판을 3만 부나 찍은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왜 도덕인가?』의 영어 제목은 ‘Public Philosophy’이고, 부제는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다. 영어 제목을 번역하면 ‘공공 철학’ 정도가 될 텐데, 한국어판은 부제를 제목으로 올려 ‘왜 도덕인가?’로 했다. 일종의 ‘전략적 제목 짓기’다. 책 제목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도덕과 비슷한 뉘앙스를 지닌 공정·정의 등이 우리 사회에 화두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올해 국내에 번역된 샌델의 또 다른 책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가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과 대비해 볼 만하다.

 『왜 도덕인가?』에 앞서 2주 전엔 『도덕, 정치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조지 레이코프 교수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프레임 전쟁』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이미 2004년에 국내에 번역됐었다. 그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혔다가 이번에 출판사를 옮겨 다시 태어났다. 2004년엔 도덕이란 키워드가 지금만큼 호소력이 없었다가, 2010년에 새롭게 그 의미가 부각된 것이다. 출판사는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다. 지난주에는 『이제는 도덕이다』(도그 렌닉 지음)라는 또 다른 ‘도덕 책’도 눈길을 끌었다. 도덕이란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독서시장에 도덕·정의의 바람이 분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스타트를 끊었다.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의·공정·도덕과 같은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든 언어들이 지금처럼 급작스럽게 유행하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미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책은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폭발적으로 팔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1만 부 팔리고, 한국에서 50만 부 팔렸다면, 미국은 정의로운 사회니까 덜 팔리고 한국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여서 아직 수요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쉽게 끓었다 가라앉고 마는 ‘냄비 기질’의 발동인가.

 우리 사회에 정의와 도덕에 대한 요구는 늘 있어왔다. 그런 요구가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도덕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어느 한순간 반짝하고 말아서도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요구의 정도다. 우리 사회가 발전해온 속도와 수준을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은 도덕과 정의의 유행이 자연스러운지 곰곰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의 과잉 이벤트화 아닌가.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