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미 온라인게임 'WOW' 한국판 만든 다섯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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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WOW 현지화팀이 게임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를 배경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안현영·김지웅·곽준호·이준호씨. 송현주씨는 일정이 맞지 않아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영어로 된 게임을 불어로 옮기는 데 엄청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

미국 블리자드사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한국 현지화팀은 최근 이런 e-메일을 받았다. 불어판을 준비하며 번역으로 골머리를 앓던 프랑스팀의 훈수 요청이었다. 그만큼 한국어판의 번역이 잘 됐다고 본다는 얘기다. 한국어판은 지난해 11월 영어판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시험판으로 첫선을 보였다.

WOW 한국 현지화팀은 김지웅(32.팀장).이준호(34).곽준호(25).안현영(26).송현주(26)씨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신문학 전공자부터 프로게이머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들은 한국어판을 위해 게임에서 사용되는 영어를 한글로 옮기고, 그래픽을 한국적인 것으로 다듬는 작업을 했다.

"미국 본사에서 처음에 집어넣으려 했던 한국적 이미지는 그야말로 엉성했어요. 한복입은 여자에게 나막신을 신기는가 하면 머리에 비녀를 세 개씩이나 꽂더라고요. 질겁을 하고 바로 잡았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남대문.석가탑.한복 등의 이미지가 게임에 들어갔다. 인명.지명.용어 등의 단어나 구절 4만3000여 개를 바꾸는 번역 작업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밤새워 사전을 들췄고, 게임의 모티브인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처음 번역한 영문과 교수에게 자문도 했다. 한 단어를 놓고 한 달 넘게 고민한 것도 있었다고 했다.

"사용자들은 한글로 표기된 영어를 접할 때 실제 뜻보다도 얼마나 멋있게 들리는가로 단어의 성질을 규정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인이 받는 느낌 그대로 우리도 우리말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고심했죠."

WOW의 전편 격인 '워크래프트'에서 '배터드 클록'이라고 썼던 것을 '닳아 해진 망토'로, '플림지 체인 브레이서'를 '허술한 사슬 팔보호구'로 바꾸는 식이었다. 과거 표현에 익숙한 일부 게이머들이 한때 반발했지만 현지화팀은 "미국 본사 개발자들은 오히려 한글판이 더 예쁘고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고 설득했다.

이들은 얼마 전 프랑스팀에 이렇게 회신을 보냈다.

"이전 판에서 사용하던 용어는 무시해도 된다. 소신 대로 밀고나가라. 여기 사용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시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글.사진=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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