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세돌, 대변화의 시동을 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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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4보 (44~54)]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흑▲는 광활한 백진 한가운데 투하된 낙하산 부대다. 이 돌은 아주 가벼워 '공격의 이세돌 '에게도 도무지 처치 곤란이다. 부근의 병력 수로는 백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건만 흑▲는 백에 기대며 그야말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움직이면 된다.

44로 밀면 45로 뻗는다. 흑은 백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궁할 때는 상대에게 기대라'는 기리(棋理)를 음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세돌의 46은 근거를 뺏으면서 동시에 궁한 상대에게 비빌 언덕을 주지 않으려는 수. 절대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왕시(王檄) 5단이 또 47로 슬쩍 비트는 빛나는 감각을 보여 줬다.

이세돌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 그는 또다시 의표를 찔렸다. 이세돌의 구상은 '참고도1'이었다. 상용의 수단대로 흑1로 두면 백2를 선수한 다음 A나 B로 중앙 집을 키운다면 아직은 먼 바둑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47은 좀 더 쉽게 틀을 잡으려 하고 있다. '참고도2'백1로 밀어야 하는데 흑2로 가볍게 처리한 다음 4의 요소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장고에 빠져든 이세돌 9단은 이를 악물며 서서히 결단을 가다듬고 있다. 흑▲와 47, 두 방의 화살을 얻어맞은 이상 이제 정상적이고 평범한 방식으로는 틀렸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세돌은 7분여 만에 48로 붕 날아들었다. 상대가 틀을 잡으려는 바로 그곳부터 갔다.

왕시 5단이 49, 51로 반발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그러나 이제는 귀를 송두리째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대변화를 통해 전면공격으로 나서지 않고는 기우는 형세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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