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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물가, 재탕·삼탕 대책으로 잡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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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마늘 저율관세 수입쿼터 1만2000t 증량, 사재기 못하도록 깐 마늘 형태로 수입, 올해분 고추 저율관세 쿼터 중 남은 양 조기 공급….

 1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놓은 농수산물 가격안정 특별대책의 골자다. 이날 아침 소비자 물가가 급등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오자 예정에 없던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20개월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선을 넘었는데, 무려 49.4%나 오른 신선식품이 주범이었다니 주무부처로서 가만히 있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 아닌가. 꼭 한 달 전 발표된 대책에도 숫자와 문구까지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날도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1일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 앞머리에 있던 배추와 무에 대한 대책이 이번엔 뒤로 밀렸고, 명태와 고등어 대책이 추가된 점 정도다.

 같은 대책이 반복돼 나오는 이유는 뭘까. 물가가 올랐으니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형식논리에 사로잡혔기 때문 아닐까. 이날 농수산물 가격안정 특별대책은 물가지수가 발표된 지 불과 3시간도 안 돼 나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책에 실한 내용이 담기길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지난달 신선식품 물가지수를 끌어올린 건 배추와 무다. 1년 전보다 261.5%와 275.7%씩 올랐다. 이에 나올 수 있는 단기 대책은 모두 나왔고, 이 때문에 최근엔 폭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올 정도다. 열무도 167.1% 올랐지만 배추값 폭등의 유탄을 맞은 탓이다. 시금치는 89% 올랐지만, 전달에 비하면 상승세가 반 토막이다. 물가지수가 이렇게 급변하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매달 상·중·하순에 한 번씩만 조사하는 방법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통계숫자에 맞춰 재탕 대책을 내놓는 것은 행정력 낭비다.

 공무원들의 충정, 모르는 바가 아니다. 지수가 올랐지만 일시적이라고, 또 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국민에게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농식품 가격은 재탕 대책으론 잡히지 않는다. 그런 대책 만들 시간이 있다면 연말까지 내놓겠다고 한 중장기 유통대책을 세심하게 다듬는 게 낫다. 거기서 실패하면 식품물가가 뛸 때마다 또 단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농수산물 물가 대책이 충정과 면피 사이에서 춤추게 하진 말자.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