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 '일진' 없는 대안학교 서울 성지중·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 2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성지고 댄스 동아리 회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김경빈 기자

11일 오후 서울 화곡동의 성지중.고등학교 안무 연습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고교 1, 2년생 8명이 힙합 댄스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이 학교 댄스 동아리 회원. 전신거울이 설치된 안무실에서 '물구나무서서 회전하기' 등 새로운 동작을 익히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 댄스팀은 일반 학교에서 버림받은 '일진'과 '찌질이(일진들에게 맞는 피해 학생의 속칭)' 출신들이 함께 활동 중인 교내 동아리다. 지난해 11월 '하이스쿨 댄스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춤 실력도 상당하다. 이들은 폭력 서클 '일진회' 등에서 활동하며 폭력을 휘둘렀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집단 따돌림(왕따)을 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 동아리에 최근 합류한 이모(19)군은 중학교 때 일진들과 몰려다니며 당구장.술집 등을 전전했다. 잘나가는 백댄서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도, 학교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고에 진학한 뒤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 학교를 자퇴한 이군은 올해 성지고에 입학했다.

그의 단짝인 주모(18)군은 경남 진주에서 알아주는 춤꾼이었다. 하지만 일진의 눈 밖에 난 주군은 찌질이가 됐다. 지난해 이 학교에 입학한 주군은 요즘 일진 출신인 이군에게 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군과 주군은 "일진이든 찌질이든 학교 안에서는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된 처지였다"며 "춤이라는 공동의 관심과 비슷한 경험이 서로의 마음을 열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지중.고교는 제도권 학교에서 소외된 청소년 등을 위해 1972년 '청소년 직업학교'로 시작된 대안학교. 86년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았고, 2001년에는 교육부로부터 '도시형 대안학교'로 인정받았다. 현재 1600여 명의 재학생 가운데 많은 수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피해자며, 일부는 절도 등 범죄에 연루된 아픈 기억이 있다.

이 때문에 교과 편성.규율 등이 일반 학교와 다르다. 국어.영어 등 정규 과정 이외에 댄스.골프.요리.컴퓨터 등의 동아리를 장려하고 있다. 동아리 회원들은 학교 폭력의 가해.피해 학생들이 골고루 섞인다. 학교 분위기는 자유분방하다. 머리 염색이나 파마뿐 아니라 피어싱(몸에 구멍을 뚫어 금속 등을 매다는 행위)도 허용된다.

97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 '형사모의재판'이 열린다.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피해 학생이 피고인과 검사로 역할을 나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 보자는 취지다. 졸업생의 4분의 1이 대학에 진학하고, 절반은 사회로 나간다. 지난해까지 모두 6000여 명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이 학교 김한태 교장은 "억누르기보다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서로를 이해하면 폭력이란 단어는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교육계 제때 대처 못해 학교폭력 문제 키워" 김진표 교육부총리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11일 학교 내 폭력 서클인 일진회 문제와 관련, "교육계가 제때 대처하지 못해 문제를 키웠다"고 질타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 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일진회는 지난 2년간 한 교사가 계속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교육계가 방치하지 않았나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부총리는 "교육 당국이 교육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안될 경우엔 부득이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기자 <njkim@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