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총리 “64년 살다 보니 … ” 일 언론 “중국 소국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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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와 간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서로 시선을 외면한 채 지나치고 있다. [하노이 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밤 정상회담 개최 35분 전 중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당한 일본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다음 날인 30일 오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대기실에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 다가와 악수를 권하며 자연스럽게 10분 동안 ‘비공식 간담’을 하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인 데다 중국 언론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간 총리는 “64년간 살다 보니 이 정도론 쉽게 놀라지 않는다. 결정적 트러블(문제)로 보진 않는다”며 애써 냉정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 정부 관계자들은 “이틀간 중국에 농락당했다”며 분이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도 발끈하고 나섰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1일 사설에서 “(중국의 주장은)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적이며 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답지 못한 외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 개발의 협상 재개에 양국이 합의했다”는 외국 통신사의 보도를 문제 삼아 정상회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통신사가 정정기사를 내보낸 데다 회담시간 35분 전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건 결례 중의 결례라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외상이 지난달 27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는 미·일 안보조약의 대상”이라고 발표한 것을 ‘회담 파기’의 이유로 든 것도 “종전 입장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만큼 설득력이 없다”는 게 아사히의 주장이다. 아사히는 또 간 총리 측근의 말을 인용, “간 총리는 지난달 29일 밤 일방적으로 회담이 깨지자 덤덤해했다”며 “이는 아마도 간 총리가 ‘중국은 그런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미우리(讀賣)신문도 사설에서 “ 30일 불과 10분간 (간 총리와 원 총리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정식 정상회담을 계속 거부해서는 ‘중국 이질(異質)론’이 점점 확대돼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분노를 애써 삭이고 있는 이유는 13일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이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간 총리와 후 주석의 회담을 양국 관계 개선의 전환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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