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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기 싫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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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호 01면

이정애(78)씨가 독거노인 돌보미 시스템 단말기로 서산시청 ‘U공공서비스 센터’를 호출하고 있다. 단말기에서 초록 버튼을 누르면 바로 연결된다.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서울서 두 시간 남짓 거리지만 인적이 드물다. 도로를 벗어나 밭두렁 길을 500m쯤 달리자 김종학(81)씨가 사는 농가가 나왔다. 김씨는 지난해 ‘독거노인 응급안전 돌보미’ 시스템을 설치했다.

독거노인 100만 명 시대 서산 ‘무인 돌보미 시스템’ 현장 르포

“올봄에 밭을 돌보고 있는데 이장이 헐레벌떡 찾더라고. 집에 불이 났다며.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깜빡했지 뭐유. 다행히 시청에서 지난해에 노인 돌보미인가 하는 것을 설치해 준 덕을 봤구먼. 연기가 나자마자 소방차가 와서 꺼줬시유. 까딱했음 집 한 채 홀랑 태워먹을 뻔했지.”

서산 토박이인 김씨는 3남 2녀를 뒀다. 네 자녀는 인천에, 막내딸은 서산 시내에 산다. 지금은 노부부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런 김씨 부부에게 ‘돌보미 시스템’은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다”고 한다. 옆 동네인 서산시 음암면에 사는 변월수(70)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변씨는 혈압과 당뇨가 있어 돌보미 시스템 우선 설치 대상이다. 잠자리 머리맡에는 비상 단말기가 달려 있다. 초록 버튼은 시청의 관제센터, 빨간 버튼은 소방서와 연결돼 있다. 누르면 즉각 출동한다.

“올 2월인가 새벽 세 시에 갑자기 쓰러졌지요. 온몸이 거의 마비됐는데 다행히 비상벨에 손이 닿더라고. 구급차가 바로 병원으로 실어다 줘서 살았지.”

‘독거노인 돌보미’는 보건복지가족부가 2008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한국의 첨단 IT기술로 혼자 사는 노인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다. 단말기와 운용소프트웨어는 SK텔레콤이 개발했다. ▶노인 외출 때 방범기능은 물론 ▶반나절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관제센터에 이상 신호가 뜨고 즉각 출동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전라북도 순창 등 3개 지역에서 시작해 지난해엔 서산 등 6개 지역이 추가됐다. 올해에도 수원시와 강원도 횡성 등 9곳이 추가돼 모두 2만7000명의 독거노인이 도움을 받고 있다. 올해부터는 지정된 보호자 또는 친구 두 명까지는 언제나 공짜로 통화할 수 있는 ‘말벗 서비스’도 시작했다. 3년 내 15만 가구까지 확대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서산시청 소속 돌보미 원보연(39)씨는 “음암 지역 7000가구 가운데 노인만 사는 곳이 700가구쯤 되다 보니 일일이 방문·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무선 돌보미 시스템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원씨는 도암리를 중심으로 100여 독거노인 가구를 맡고 있다. 매일 10명씩 직접 찾아가 건강과 주변 상황을 살피고 기계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보름에 한 번꼴로 얼굴을 맞대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다. 낮 시간 동안 하루 다섯 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밤늦게나 새벽에도 ‘출동’하는 경우가 잦다. 원씨는 “막상 가보면 기기 불량이나 잘못 누르는 등 헛걸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래도 별일 없다는 걸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며 웃었다. 서산시의 올 들어 9월까지 응급호출은 200여 건이었다. 서산시청에 마련된 ‘유비쿼터스(U) 공공서비스 센터’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한다. 50인치 디스플레이 두 대에 돌보미 시스템과 원격 의료 시스템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뜬다. 어느 마을에 몇 명이 집을 비웠는지, 오늘 아침 혈당·혈압이 얼마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노인문제는 이미 국가적 과제가 됐다. 그중 혼자 사는 노인 문제는 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올해에는 535만 명으로 인구의 11%에 달한다. 혼자 사는 노인 수도 올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독거노인은 경제적으로 일반 노인보다 더 어렵다. 노인 가구 평균 소득은 월 183만원이지만 독거노인은 월 25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질병과 외로움에 더 많이 시달린다. 통계청 관계자는 “일반 노인들은 건강검진(35.4%)을 가장 많이 원했지만 독거노인들은 간병 서비스(28.2%)를 더 원했다”며 “그만큼 질병에 더 시달린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서산의 6만2000가구 가운데 5000가구가 독거노인이지만 돌보미 시스템을 설치한 곳은 1600가구에 불과하다. 서산시 주민지원과 윤상명 주사는 “어르신들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기 싫다’며 설치를 부탁한다”며 “예산이 없어 원격점검 시스템과 돌보미 인력을 많이 늘릴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꽤 있지만 독거노인 돌보미 시스템은 통신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소외계층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산시 주민지원과 윤영구 계장은 “돌보미 시스템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콜센터로 ‘전화요금이 많이 나온다’ ‘전기밥솥이 고장 났다’는 등의 민원 전화도 많다”며 “그러면서 독거노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무인·무선 노인 돌보미 시스템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6.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수준이지만, 10년 뒤에는 5명이 1명을, 20년 뒤에는 2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경제적인 부담도 문제지만 노인을 돌볼 인력 자체가 부족해진다는 얘기다. SK텔레콤 허재영 매니저는 “한국의 강점인 IT기술을 노인 문제와 접목하는 게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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