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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출 땐 시장개척팀보다 사회공헌팀 먼저 보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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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호 11면

안잔 고쉬 인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업사회공헌(CSR) 책임자는 “지역사회가 발전해야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며 CS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텔 코리아 제공]

연말이 다가오면 대기업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포함한 각종 단체에 뭉칫돈을 내놓는다. 좋은 일도 하고 기업의 이미지 개선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런 금전적 기부는 가장 손쉽고 초보적인 기업사회공헌(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방식이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자선적·금전적 기부에서 방향을 튼 지 오래다. 제품이나 서비스 등 주력 사업의 콘텐트를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매출 등 경영 성과도 높이려는 ‘전략적 사회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 성장과 사회 기여, 두 토끼 잡는 인텔의 ‘전략적 사회공헌’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존경받는 기업의 조건’이란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들도 새로운 차원의 CSR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 성공적인 모델의 하나로 꼽은 기업이 인텔이다. 인텔은 주력 상품인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빈곤층의 정보격차와 실업과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도우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인텔은 21, 22일 양일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필리핀의 아시아경영대학원과 공동으로 제9회 아시아 CSR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의 주제도 ‘CSR을 통한 기업 경쟁력 향상’이었다. 행사장인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20일 인텔의 안잔 고쉬 아시아태평양지역 CSR 책임자를 만나 인텔의 CSR에 대한 비전과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인도 출신의 통계학 박사인 고쉬는 현재 미국-아세안 비즈니스위원회 이사이기도 하다.

-모든 기업이 공익적 활동을 통해 경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인가. 전략적 사회공헌은 환상이고 오히려 기업이나 사회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CSR의 사업적 가치를 단순히 이윤으로만 환산하려고 한다면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각 기업이 처한 다양한 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할 능력을 키우는 것도 CSR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업적 가치다. 기후변화나 물 부족 등 환경 문제는 우리 모두가 처한 도전이다. 또 오늘날 세계의 시장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한 나라의 교육이나 빈곤, 기아, 에이즈 등의 질병, 인권, 근로 환경 등의 문제가 이제 더 이상 그 나라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더욱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세계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의 빈곤층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업에게 새로운 소비 시장을 개척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전략적 사회공헌은 사회공헌이란 말을 앞세운 마케팅 기법 아닌가.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지역사회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사회공헌을 하는 것이라면 마케팅과 사회공헌 활동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해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공익을 고려한 기술 개발과 사업활동은 결국 그 기업의 혁신과 이익으로 이어진다.”

-인텔은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 시장조사팀보다 먼저 사회공헌팀을 보내기도 한다고 들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먼저 정부나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그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시하면서 우리의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몽골 등이 그런 예다. 베트남은 교사들에게 21세기형 교육기법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2005년에 시작했고, 공장은 그로부터 1년 뒤에야 착공해 바로 이번 주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8만7000여 명의 교사들이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또 장학사업을 통해 베트남의 인재들에게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고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 인텔에서 일하도록 한다. 이는 우리의 현지 인력개발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주주들의 반발은 없나.
“다행히 우리 회사의 이사진이나 주주들은 그런 가치를 잘 이해해주고 있다. 그래도 주주들에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게 좋다. 즉,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40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당해에만 1800만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는 식으로 성과를 수치화해 보여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직원들은 어떤가. 그런 CSR 전략을 어떻게 이해하고 참여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공유와 자발적인 의지다. 인텔 내엔 지속가능성 이슈에 관해 함께 고민하고 관련된 CSR 프로젝트를 연구하려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풀뿌리 조직들이 많다. 회사에선 직원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업무성과 평가 때 CSR과 관련된 목표 달성을 얼마나 했는지도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이것이 상여금 등 인센티브로 이어질 수 있도록 CSR 담당 부서와 재무 부서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인텔의 CSR 예산은 얼마 정도 되나.
“CSR은 이제 우리 회사의 모든 사업분야에 뿌리 깊이 융합돼 있어 관련 예산을 따로 수치화하는 건 무의미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를 테면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편의시설을 짓거나 원료 공급자들을 대하는 방식, 직원들의 자원봉사 활동,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굳이 별도의 예산을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각국의 교육 프로그램에 10억 달러(약 1조1300억원)쯤 썼다. 또 1998년부터 시작한 수자원 보존 프로젝트에는 1억 달러가 투입됐다.”

-단순한 금전적 후원도 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물론이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단순한 물품을 기부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기관이나 행사를 후원할 때도 항상 일회성이 아닌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4년째 후원하고 있는 아시아 CSR 포럼도 주최 측인 아시아경영대학원과 구축한 긴밀한 파트너십의 일부일 뿐이다. 교수들과 MBA과정의 커리큘럼에 CSR과 관련해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 게 좋을지 토론하거나, 우리에 관한 기업사례를 제공하고 함께 연구해 책을 내기도 했다. 지난 9월 한국의 희망제작소와 함께 서울에서 아시아 14개국 비정부기구(NGO) 리더들의 회의를 처음 개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면서 앞으로 사회혁신을 위한 NGO들의 역량 강화와 아시아 지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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