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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 둔갑한 ‘항미원조’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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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6월에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런데 10월에는 요란스럽다. 한국전쟁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6월에는 중국의 양심적 비주류 역사학자들이 한국전쟁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주목받았으나 중국 정부는 당시 조용했다. 반면 10월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함)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며 떠들썩하게 치켜세웠다. 한국전쟁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6월과 10월의 기온차만큼이나 현격해 적잖은 한국인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누가 뭐래도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기습 남침한 사실은 이제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으로 통한다. 김일성의 침략 전쟁을 승인한 스탈린의 나라도 남침설을 인정하는 추세다.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해 딴소리 하는 예외가 있다면 북한과 중국 정도다. 북한은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논외로 치자.

 그렇다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중국은 왜 수백만 명이 희생된 비극적 전쟁에 정의라는 찬사를 갖다 붙이는 것일까. 단적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식 인식론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조선전쟁’과 ‘항미원조전쟁’으로 쪼개 두 개의 전쟁으로 인식한다. 조선전쟁은 남북한의 내전으로 본다. 그 때문에 현행 중국 역사교과서는 전쟁 도발자가 누군지에 대한 기술은 피하고 “내전이 발발했다”고만 적고 있다. 남북한 어느 한 쪽을 편 들어 득 볼 일이 없다는 계산에서다. 중국은 6월 25일에 발발한 조선전쟁이 38선에서 시작돼 압록강변에서 북한의 패배로 사실상 끝났다고 본다.

 반면 중국은 그해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넘으면서 새로운 전쟁, 즉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됐다고 본다. 압록강변에서 시작된 전선이 53년 7월에 휴전선에서 끝났다는 이유로 중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변한다. 중국의 동북지역을 위협한 침략자(미국)를 물리쳤다고 보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떠벌리는 것이다. 한반도의 진짜 주인의 허락 없이 중국이 멋대로 전쟁에 개입했으니 비난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한국인들과 인식 차이가 극명하다.

 한국전쟁의 분리 인식론은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주류적 시각으로 자리 잡았으나 한국인들만 잘 몰랐을 뿐이다. 한국전쟁을 두 개로 나눠 접근하면 중국은 무척 편리해진다. 한국의 보수적 인사들이 반발하면 중국은 “우리가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평가한 것은 한국전쟁 전체가 아니라 항미원조전쟁 부분”이라며 빠져나가려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반발을 동문서답(東問西答)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손오공이 둔갑하듯 편의대로 진실과 정의를 뒤섞어 버리는 중국식 변신술의 근저에는 중국의 국익 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온갖 괴이한 논리와 포장술을 동원하더라도 수백만 명이 희생된 비극적 전쟁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은 천안함 사건이다. 보고 싶은 일면만 보려는 태도가 한국전쟁 인식론과 빼닮아서다. 먼 훗날 중국은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둔갑시킬까.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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