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주르차니 총리 인터뷰] "한국기업 유럽 공략 교두보 맡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헝가리는 폴란드.체코와 함께 21세기의'젊은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헝가리는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각제 아래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페렌츠 주르차니(43) 총리는'젊은 헝가리'의'젊은 지도자'다. 우리로 치면 386세대다. 옛 공산당 학생 지도자에서 자본주의 청년 기업가로 변신, 큰돈을 벌었다. 그 후 정계에 투신해 지난해 9월 총리로 선출됐다. 방한 중인 주르차니 총리를 10일 중앙일보가 단독 인터뷰했다.

-귀하는 43세에 총리가 됐다. 각료 중 연장자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혹시 나이가 국정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각료가 여럿 있다. 조각(組閣)에 있어 나이가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직책에 걸맞은 능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외의 다른 기준으로 각료를 인선한다면 정부 운영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이 때문에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없다."

-귀하는 헝가리의 부자 랭킹 50위에 올라 있다. 부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富) 가운데는 기회라는 공적(公的)인 부가 있다. 기회는 돈과 달리 한정된 재화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나눠 줘도 없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기회는 많이 만들어 낼수록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나에게 기회가 왔기에 나는 그것을 활용했고, 그래서 돈을 벌었다. 기회 창출이 국가의 책무만은 아니다. 부자들이 사회에 지고 있는 빚이기도 하다."

-귀하는'자유롭지만 정의로운 헝가리'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글로벌 경제의 살벌한 경쟁 속에서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규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은 필연코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국가에 의한 배분이 해답일 수는 없다. 복지 혜택을 증대시키지 못하면서 국가의 힘만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통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국가 목표가 돼야 한다. 시장을 국유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사회를 시장화해서도 안 된다."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짧은 기간에 헝가리는 글로벌 경제질서에 성공적으로 편입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외국기업들의 투자 열풍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에서 보듯 외국자본의 압도적 지배력이 경제적 불안정의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귀하의 견해는.

"89년 체제 전환 이후 지금까지 이뤄진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만 230억 달러에 달한다. 초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주요인이었지만 지금은 고부가가치와 자본집약적 업종에 대한 투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지금 헝가리 경제와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경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헝가리의 경우 직접투자가 대종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해 아시아국들의 경우 고수익과 환차익을 노린 단기성 투기자본이 문제였다."

-귀하는 사회당과 자유당 연립정권을 이끌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구분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좌파냐 우파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발전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좌.우를 떠나 모든 정치세력은 도전에 발전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와 번영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다뤄나갈 수 있다고 본다. 때로는 좌.우의 차이가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양측이 민주주의 규칙에 충실하고, 서로의 존재와 애국심을 인정하는 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좌.우를 따지기 전에 민주주의 신봉자여야 한다."

-헝가리는 서유럽과 발칸반도 사이의 전략적 요충에 위치해 있다. 더구나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헝가리 역사에 비추어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헝가리는 외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1100년 동안 강대국들 틈에서 힘든 줄타기를 했다. 우리의 경험은 고유한 가치와 국익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미래를 향한 올바른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목표에 대한 정치인과 국민의 컨센서스는 불가결한 요소다."

-89년 수교 이후 헝가리 총리가 방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방한에서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중.동부 유럽국 중 한국과 수교한 첫 번째 나라가 헝가리다. 수교 이후 삼성.LG.한화 같은 한국기업들이 활발하게 헝가리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열기가 좀 시들해진 것 같다. 이번 방한을 통해 헝가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깨워 보고 싶다. 우리의 목적은 헝가리를 한국기업들의 유럽 공략 교두보로 만드는 것이다. 헝가리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에 각종 유리한 조건과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다. 양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이를 인적 자원을 통해 보완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보기술(IT).관광.문화.교육.과학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은 무엇인가.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만 고른다면.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이라면 앤서니 기든스가 쓴 '제3의 길'을 들겠다. 그 책을 헝가리어로 직접 번역해 출판한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만난 사람=배명복 국제문제담당기자 <bmbmb@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