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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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는 처음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보였다. 밤에 누나들이 제 방으로 돌아간 뒤에 어머니가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 내가 눈이 나빠졌는가 보다. 이거 좀 읽어 줄래?

그녀는 평소에는 자잘한 글씨의 일본 문고판을 잘도 읽더니 잡지에 나온 내 소설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 마주 앉아 '입석부근'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스스로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눈치를 보니 열심히 듣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낭독을 끝내고 나니 제법 밤이 깊었다. 어머니가 연탄불 뚜껑 위에 얹어 두었던 군고구마를 꺼내다 주어서 둘이서 입김을 후후 불면서 먹었다. 뒷날에 어머니가 누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애가 글을 쓰겠다는 걸 반대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어릴 적에 일기를 써 보라고 하고 책도 사다 주고 했던 건 이담에 글을 써서 먹고 살라는 얘긴 아니었다. 그저 책하구 친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했지.

큰누나는 이렇게도 말했다.

- 어머니는 당신 발등을 찍으신 거야.

나중에 어른이 되고 전업작가가 되어서 어려울 때는 작가라는 직업이 '천업'이라고 자조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천업(賤業)은 아니지만 천직(天職)이라고 수수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소설가라는 것이 옛날의 그 무슨 선비가 아니라 원래 '시정잡배'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무렵에 동화에서 전진호와 알게 되었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피리 부는 소년처럼 순진하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문예반의 전형인 심각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진호는 진작부터 각 학교 남녀 문예반 학생들 사이에 이름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를 통해서 같은 무렵에 나중에 작가가 된 조세희나 조해일이나 호영송 등을 보았고 시인 이근배도 그 언저리에 있었고 나중에 시인, 소설가가 된 몇몇 다른 사람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돌체 근방에서 어울리거나 전후였던 오십년대의 남은 풍속인 찻집을 사랑방으로 삼고 있던, 이를테면 공초 오상순의 '청동' 부근에서 만났다고 한다. 나중에 연극을 하게 된 손숙도 거기 보였고 유명 화가가 된 이들도 몇 명 있었다.

돌체 부근에는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어서 김수영이 낡은 홈스펀 상의나 노란 스웨터 차림으로 앉아 책을 읽는 것도 보였고, 신동엽이 충청도 사투리로 기염을 토하는 것도 보였으며, 그때부터 친구 문인들에게 손가락 셋을 펴 보이던 천상병은 늘 명동 공원의 근처 선술집이나 동화와 돌체를 오고 갔다. 손가락 셋이란 천상병의 하루를 결정 짓는 기본 생존 비용이었는데 백양 담배 한 갑, 막걸리 한 주전자, 또는 점심값이었으리라. 하여튼 나와 성진이나 택이, 상득이 등은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다. 상득이 말이 재미있었다.

- 원래가 유유상종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 그리고 어른들 근처에는 안 가는 게 훨씬 낫지. 왜 그런가, 자립해야 새로워지거든.

그런데 돌체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딱히 갈 데가 없던 이들이 동화로 옮겨 오면서 진호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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