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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방가? 방가!’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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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소리소문 없이 관객 100만 명을 넘보는 영화가 있다. 8억원의 저예산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을 다룬 ‘방가? 방가!’다. 부탄 출신의 방가로 위장취업한 청년 실업자 방씨가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스타 배우와 요란한 광고는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5주 연속 뒷심을 이어가고 있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외국인 노동자 70만 명 시대, 그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헌법재판소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14일 헌재 대심판정.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을 옮기는 자유를 놓고 공개변론이 불을 뿜었다. 우리의 고용허가제는 이직 횟수를 3회로 제한하고 있다. 어기면 강제 출국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은 “국적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는 안 된다”고 못박아 놓았다. 헌법학자들은 외국인도 평등권의 주체로 간주하는 게 대세다.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이 차별을 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6년까지 허용했던 규정을 지난해 ‘3년+2년 연장’으로 고쳤다. 5년 이상 체류하면 영주권을 줘야 해 정주(定住)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외국인 근로자의 업종도 제한하고 있다. 노동부 민길수 외국인력정책과장은 “내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고 했다. 정부가 인권보다 정책 대상으로 간주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직 제한은 원래 좋은 의도로 삽입됐다. 예전 산업연수생 제도는 이직 자체를 금지시켰다. 아시아에서 이직을 허용하는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 이민의 나라 미국조차 직장을 옮기면 바로 강제 출국시킬 정도다. 그런 조항이 위헌소송에 걸려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헌재가 고민하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이직 제한을 풀면 당초 고용허가제의 목적이던 중소기업의 노동력 확보가 어렵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의 절대 다수는 10~19인 이하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위헌 결정을 내리면 똑같은 논리로 업종 제한까지 풀어야 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독일 같은 일부 유럽 국가만 채택하는 제도다. 영국과 미국도 고용허가제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양극화돼 있다. 부르는 이름부터 다르다. ‘이주노동자’로 표현하는 진영은 그들에게 지극히 우호적이다. 반대편 진영은 이들을 ‘외노(외국인 노동자의 준말)’라 부르며 싸잡아 비난한다.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정서는 어디쯤일까. 아마 ‘이주노동자’와 ‘외노’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이국땅에서 힘든 일을 도맡는 데 대한 고마움, 그래도 급진적 변화는 망설이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 10년간 정부 정책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고용허가제로 송출 비리를 막았고, 최저임금제도 보장하고 있다. 깐깐한 국제노동기구(ILO)조차 성공사례로 꼽았다. 물론 컨테이너 숙소처럼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차별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1인당 월평균 임금은 130여만원(잔업·야근 수당 포함)으로 대만·홍콩·싱가포르보다 갑절 가까이 많다. 아시아에서 한국 입국은 로또나 다름없는 게 분명한 현실이다. 얼마 전 네팔에선 한국어 시험에 4만 명이 몰려 경찰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외국 인력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중소기업들은 요즘 외국인 노동자 모시기에 혈안이다.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 종업원 50명의 회사를 10명 단위로 쪼개는 편법까지 동원된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스페인과 일본은 비행기표와 위로금까지 쥐여주며 외국인 노동자를 내쫓기에 바쁘다. 우리보다 인권이 앞선 나라조차 자국민을 위해 차별대우를 서슴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중요하다. 길게 보면 한국은 저출산 때문에 이민사회로 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빗장을 풀기엔 성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헌재와 우리 사회가 인권과 현실 사이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섰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