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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의 기적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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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누지마(犬島)-. 일본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의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떠 있는 자그마한 시골 섬이다. 인구 불과 50명, 평균연령 75세인 이 시골 섬에 ‘깜짝 놀랄 일’이 터졌다. 최근 100일 동안 무려 8만 명의 관광객이 이누지마를 찾은 것이다. “통계는 없지만 아마 최근 100년간의 방문객 수만큼 몰렸을 것”(가가와현 관계자)이란다. 동 제련소가 있을 당시 인구가 3000명에 달하던 이 섬은 약 100년 전 제련소 폐쇄 이후 폐허가 됐다. 그런 이누지마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멀리 도쿄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국내외 관광객이 쇄도하고 있는 것일까.

 3년 반 전 나는 이누지마에서 배로 40분 거리의 나오시마(直島)를 둘러보고 ‘나오시마의 기적’이란 칼럼을 썼다. 버려진 섬에 가까웠던 나오시마를 일본의 교육사업 그룹인 ‘베네세’와 주민들이 손잡고 ‘예술의 섬’으로 변신시킨 게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2년 전 나오시마 주변 6개 섬이 밝힌 ‘세토나이 국제예술제 구상’에 무릎을 쳤다.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한 7개 섬이 서로를 바닷길로 이어 자체 예술제를 열겠다니 발상이 기발했다. 그래서 ‘나오시마의 기적 2’란 칼럼을 썼다.

 그런데 설마 했던 이 국제예술제가 정말로 열렸다. 이번 주말이면 100일간의 막을 내리는데, 그 호응이 놀랍다. 주최 측이 예상한 30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 100만 명이 7곳의 섬을 찾았다.

 대성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섬들과 지자체, 예술인들의 끊임없는 변신과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컨대 이누지마. 아무 쓸모 없이 우뚝 솟아 있던 옛 제련소의 50m 높이 굴뚝은 바로 옆 미술관의 공기청정기로 변신했다. 미술관의 에어컨 역할이다. 섬에 있던 민가 4곳은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의 주도로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동네 목욕탕도 ‘작품’이 됐다. 이누지마에서 배로 25분 거리의 데시마(豊島). 섬 동쪽 해안가에는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가 연출한 설치예술작품 ‘심장음 보관소’가 있다. 전 세계의 제각각 다른 심장소리를 모아놓은 기발한 이 작품을 보려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겉으로 봐선 민가인지 예술작품인지 모르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뜨거운 호응에 세토나이 섬들은 3년 후에 국제예술제를 또 열기로 했다. 다만 3년 후는 세토나이카이의 유인도(가가와현) 24곳이 다 참여할 공산이 크단다. 말 그대로 세토나이 해협의 바닷길이 예술로 총총 이어지게 되는, ‘나오시마의 기적 3’이다.

 한국에도 남해안 섬들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나오시마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가 섬 개발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일부 섬은 벌써 대대적 공사에 착수했다. 섬에 활력이 도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원칙 없는 개발이다. ‘예술 섬’을 만든답시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섞어 모아 ‘잡탕 섬’을 만들진 않을까 두렵다. ‘나오시마의 기적’이 1탄에서 3탄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활용해, 없는 것을 만든다.” 꼭 기억하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