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십자가 '신성한 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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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집트 사제들의 목걸이용 십자가는 영락없는 패션용품이다. 민속적 분위기의 이 '액세서리 십자가'는 덩굴 문양이라서 십자가 형상은 채 드러나지도 않을 정도다. 반면 독일의 한 십자가는 모던한 예술품으로 딱이다. 동서독을 가로질렀던 철조망을 가로세로로 용접한 것이 전부이고 그 위에 '불경스럽게도' 볼트.너트 등 폐기물품으로 예수를 형상화했는데, 희한하다. 분단 민족의 아픔까지 마음 짠하게 전해져온다.세계 각국에서 컬렉션한 다양한 십자가 500여점이 한 공간에 모인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신경하 목사)는 '세계의 십자가전'을 11일~19일 서울 감신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갖는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십자가전이다.

십자가를 모은 이는 10여년전 독일의 한인교회에서 사역하며 한두 점씩 컬렉션해온 송병구(44.사진) 목사.

송 목사는 "열십(+)자 형상이 전부일듯 싶은 십자가가 얼마나 서로 다른 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가를 확인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십자가란 형틀에 달려 피 흘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의 상징이지만, 각국 토착화 과정에서 무수한 변형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변형과정에서 '형틀' 차원을 뛰어넘어 생명.연대.평화.춤과 노래 등 21세기 인류의 화두를 포괄하는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


이를테면 북유럽 겔틱의 십자가는 십자가 뒤를 원으로 감싸안았다.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의 경우 좌우로 가로지르는 나무가 세 개나 된다. 반면 가로로 된 나무를 아예 잘라낸 일자형 십자가도 있다. 독일 슈바르트 발트 지방에서 송 목사가 컬렉션한 십자가가 그렇다. 즉 양팔이 잘린 예수를 일자형의 틀 위에 형상화했지만, 종교적 숭엄함은 여전하다. 재료도 다양하다. 나무나 쇠 외에 소금.동물뼈.양초.못 등까지 동원됐다.

송 목사에 따르면 이런 다양함은 지난 2000년간의 전통이다. 즉 십자가는 그리스 형(+) 라틴형(†)을 기본으로 하되 형태별로 다양하며, 그 위에 닻.물고기.비둘기 발자국 등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크기도 보석으로 치장된 중세시절의 초대형에서 손톱만한 크기(총알 탄피로 제작)까지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한국적 십자가'가 매우 궁하다는 점이다. 감리교 측은 남쪽의 한라산 나무와 북쪽의 백두산 나무로 만든 대형 통일십자가와 조각보 십자가 등을 출품키로 했다.

한편 송목사는 전시회와 별도로 단행본 '십자가-168개의 상징 찾아가기'(KMC)를 출간했다. 이 책은 십자가 엠블럼을 생명.영성.하나됨의 3개 주제로 나눠 정리했다. 전시회 출품작들이 조각작품이라면 책 속의 엠블럼은 평면 회화.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엠블럼이 훨씬 자유자재다. 고 전재선 목사의 십자가 작품인 '올 래(來)자 십자가'가 파격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는 의미다. 또 '붉은 악마'의 응원 티셔츠 4장을 모아 만든 적십자 운동 심벌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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