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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업체, 현금 거래 많은데 규제 안 받아 회원 돈을 제 돈 쓰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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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례비용을 걱정하는 서민의 쌈짓돈을 기업 대표가 착복하는 전형적인 민생 침해 사건이다.” 보람상조와 현대종합상조 수사를 지휘한 차맹기 서울 남부지검 부장검사는 상조업계 비리를 이렇게 정의했다.

 1조 8000억원 규모의 상조업계가 횡령 등 비리로 어수선하다. 업계 선두권 업체의 대표들이 잇따라 검찰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업계 1위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이 300억원이 넘는 공금을 횡령해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현재 1위 업체인 현대종합상조의 박헌준 대표가 100억원에 가까운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서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현대종합상조는 지난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에 이어 올해는 천안함 46용사 장례를 맡았던 업체다. 지난달에는 한라상조의 박헌춘 대표가 25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러한 횡령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검찰과 관계 기관은 그 원인을 상조업계의 구조적 특성으로 봤다. ▶관련 법규가 없고 ▶현금 거래가 많으며 ▶주 고객이 노년층이라는 세 가지 이유다. 상조업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돈을 일정 기간 매달 납부해 정해진 금액을 채우고, 장례·결혼 등 큰일을 치를 때 서비스를 받는다. 국내에는 1980년대 초 부산에 상륙했다. 이후 30년간 ‘이름 없는’ 업종이었다. 관련 법규나 허가 요건이 없었다. 자본금 5000만원을 갖춰 사업자로 등록하면 곧바로 영업할 수 있었다. 업체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데 주무기관도 없었다. 금융감독원은 “상조업은 보험과 별개”라는 이유로 감독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법망의 사각지대였다.

 상조업체와 고객 사이에는 주로 현금이 오간다. 상조 서비스 한 개 계좌의 총납입금액은 일반적으로 350만~400만원 정도. 이를 다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장례가 발생하면 잔금을 한 번에 내야 서비스를 받는다. 이는 주로 장례식장의 부조금으로 내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잔금 납부는 100% 현금으로 이뤄지는데 이게 투명성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시는 적고 현금 거래가 많아 구조적 비리가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상조업체 횡령 피해는 고객에게 직접 돌아간다. 다른 업종의 횡령이 회사의 이익금을 빼돌리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고객이 낸 돈이 그대로 빠져나간다. 특히 노년층의 피해가 크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국 이성만 차장은 “자세한 약관을 듣지 못한 채 자식들 부담을 덜어 준다는 말에 가입한 노인이 많다”고 말했다. 모든 장례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홍보했는데 알고 보면 가장 지출 규모가 큰 장례식장과 접대음식 비용, 장례지 비용은 별도라는 것이다. 해약하면 낸 돈의 절반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세업체들이 합병하면서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가입 고객을 넘겨받아 발생하는 피해도 잦다.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은 지난 5월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상조 비리 수사 촉구 대상 46개 업체의 목록을 적어 횡령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달라 는 내용이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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