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고령사회 정책 우선순위 매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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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오십년 전만 해도 환갑을 맞는다는 것은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어서 큰 잔치를 열고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환갑은 물론 칠순(七旬)잔치도 주변의 눈치를 보아가며 하는 세상이 됐다. 평균수명이 '예부터 아주 드물다'는 뜻의 고희(古稀)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명연장과 초저출산으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구성비율이 1960년 2.9%에 불과했으나 현재 9.1%로 높아졌고, 2050년에는 무려 37.3%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의 중위연령은 현재의 34.8세에서 2050년 56.2세로 높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4996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에는 4235만 명으로 줄 것으로 추계된다.

출생률의 감소와 수명연장에 따른 이 같은 변화는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부합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긴장과 혼란이 유발된다.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나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복지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 기업경쟁력이 약화되고 국가의 경제성장 또한 저하된다.

이러한 인식하에 우리 정부도 고령사회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진 국가에 비해 노인복지를 위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각종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기보다 그 주요 원칙과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요 정책 방향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출산수준을 높여 노동력 부족에 장기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하고 외국노동자를 들여오는 방식으로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는 단기적 대안도 있다. 많은 국가가 출산을 장려, 경제활동인구를 늘리고 노인인구와의 양적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책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교육제도의 개선,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 육아 분담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출산장려 정책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 국가에서도 출산장려 정책은 그동안 효과를 별로 거두지 못하였다.

둘째, 노인의 독립성과 자립성을 증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기업도 다양한 고용기회를 제공해 노인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일정금리를 보장하여 노후에 대비한 장기 저축과 투자를 유도하는 금융제도도 필요하다. 고용침체와 저금리 현상이 지속돼 '사오정' '오륙도'라는 자조적인 표현들이 회자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스스로 노후에 대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셋째, 연금과 의료보험제도를 하루 빨리 개혁하여야 한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현재처럼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연금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의료비용 역시 노인인구의 증가와 수명연장으로 앞으로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과 의료보험제도를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노인을 부양하는 국가.사회.가족의 기능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가족의 노인 부양기능이 점차 퇴색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열악한 노인복지 재정을 감안할 때 가족의 부양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경제적 자립이 어렵고 가족의 부양을 받을 수 없거나 병약한 노인을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김두섭 한양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