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수퍼 피해보지 않게 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지난해부터 중소기업 10여 곳과 공동으로 정보기술(IT)과 첨단섬유 소재를 결합한 특수 전투복을 개발 중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연 3000억원대 국내 시장은 물론 그 100배(약 30조원)인 세계 시장에도 도전할 수 있다.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25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확산을 위한 대기업 간담회’ 자리.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군수품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자 자리를 함께한 대기업 총수들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9월 2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렸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회의’의 후속 격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 장관은 “당시 참석하지 못한 대기업 총수 여덟 분에게 동반성장 정책의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날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중소기업과의 협력방안을 내놓았다.

이웅열 회장은 기자에게 ‘군수품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우리와 함께하는 협력업체 중엔 지금까지 수출 실적이 전무한 곳도 있다”며 “이들과 더불어 파이(시장 규모)를 키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앞으로 임원 고과평가 시스템에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이행 실적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소상공인 사업영역 침해 사례로 꼽히는 기업형 수퍼마켓(SSM) 문제도 거론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당분간 SSM 진출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 SSM 사업과 관련해 ‘위장 개업’ ‘기습 개점’ 등의 논란이 일면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마찰을 빚어왔다. 이와 관련해선 “앞으론 이런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는 이상 SSM 사업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대기업 때문에 골목 수퍼마켓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이들의 자생력 강화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경쟁력 있는 중소 제조기업에 대해 고급 유통정보를 제공하고, 해외 판로 개척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신동빈 부회장은 “저를 포함해 각 계열사 CEO들이 지속적으로 협력업체를 방문해 현장의 의견을 듣고 업무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며 “이를 통해 (협력업체의)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영 OCI 회장은 “이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기본조건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재계는 자기 목소리를 전달했다. ‘할 일’을 하겠지만 ‘할 말’도 하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달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보호하기로 한 데 대해 재계는 “신중하게 접근해줄 것”을 요청했다. 과도한 보호가 시장경제 원리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참석자는 “대기업이 진출해 관련 시장이 커진다면 중소기업과도 윈윈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또 “동반성장을 규정할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일률적인 잣대가 아니라 조선·유통·섬유 등 업종별 특수성이 감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장관은 이들에게 “실질적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협력사에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들을 포함해 이준용 대림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손관호 대한전선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