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 김종국·제해선씨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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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소중한 존재

김종국·제혜선씨 부부는 한 이혼가정이 위탁한 수빈·수남(가명)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조영회 기자]

22일 오후 천안시 입장면 한적한 시골마을에 어둠이 내릴 무렵. “아빠~엄마~ 다녀왔습니다” 노란색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린 수빈(4·여·가명)이와 수남(3·남·가명)이가 집 앞에 마중 나온 아빠·엄마 품속으로 힘껏 달려들었다. 생각지 못한 아빠의 출현(?)에 둘째가 아빠의 목에 매달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질투심이 생겼는지 엄마 품에 있던 첫째도 아빠 다리에 매달렸다. “에고 이놈들아, 아빠가 그렇게 좋냐”는 엄마의 말에 두 아이는 아빠 품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었다. 모처럼 퇴근을 일찍 서두른 탓에 아빠는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페인트 냄새와 땀내에도 아랑곳없이 아빠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 하려고 난리법석이다.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오똑한 코.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긴 수빈이와 수남이는 김종국(54)·제혜선(44)씨 부부의 친자녀가 아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두 딸 혜란(26)씨와 혜정(25)씨가 있다. 자녀가 있지만 수빈이와 수남이를 맡아 키우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부모들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아이를 맡긴 것이다. 위탁모 제혜선씨는 어젯밤 막내(수남)가 밤새 보채는 바람에 잠 한숨 못 잤다. 이른 새벽까지 업어 재우느라 어깨며 허리까지 뻐근할 지경이다.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건 이처럼 일정 정도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평범한 가정이 찾은 또 다른 행복

김종국·제혜선씨 부부의 가정 환경은 같은 연령대와 좀 다르다. 곳곳에 벽지가 찢어지고, 거실 한쪽에는 기저귀, 동화책, 장난감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늦둥이를 낳거나 어린 자녀를 키우는 20~30대 젊은 가정과 비슷하다. 이들 부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나 주변에서 부러움을 살 만한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김씨의 사업장은 평범함을 넘어 식솔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오래 전 옆집 문방구가 이사가면서 버린 책꽂이를 건축·철제·가정용 페인트 진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30여㎡ 남짓의 좁은 가게를 24년째 운영하며 두 딸을 성장시켰다. 힘들 때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새 식구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일터가 돼 버렸다. 찌는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로 버텼다. 추운 겨울에는 손 난로 하나로 추위를 이겨 냈다.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게가 가정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늘 허름한 와이셔츠 차림을 한 후덕한 인상 덕분인지 나름 지역에서 ‘방염, 방수, 내화전문’ 업계에서 이름(㈜엘림C&C)이 알려져 큰 적자 없이 운영하고 있다.

위탁아동은 삶의 원동력

이들 부부가 위탁가정의 아이들에게 애착을 가진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 김씨의 가정환경 탓이 크다. 김씨는 어릴적 편부모 밑에서 어렵게 살았다. 당시 김씨 아버지가 마약과 알콜 중독에 빠지면서 수많은 폭력과 폭언을 겪어야 했다.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가출했고, 하루 아침에 한 가정의 5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김씨는 9살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며 두 동생과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든 적도 많았다고 했다. 가정이 깨지면 자녀들에게 큰 고통이 따른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탓에 김씨는 위탁아동만 보면 늘 가슴이 메인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찾기 위해 1996년 신문에 가정위탁(아이돌보기) 광고를 내기도 했다. 우연히 편부모 가정에 있는 아이를 돌봐주면서 위탁아동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두 딸이 초등학교 3, 5학년에 다니고 있었지만 몇 달의 공백 기간을 빼고는 늘 위탁아동과 함께 생활해 왔다. 지금의 수빈·수남이를 비롯해 이 가정을 거쳐간 아이들만 14명이나 된다. 함께 지내던 아이가 친부모의 가정으로 돌아갈 때는 정이 들어 많이 힘들지만 부모의 곁으로 간다는 것에 큰 위안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두 딸도 아버지의 성장 과정을 알기 때문에 위탁아동을 늘 친동생처럼 보살펴 왔다.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자란 딸은 피아노 학원과 방문학습지 교사로 일하며 불평 없이 수빈·수남이를 돌봐주고 있다. 김혜란(큰딸)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위탁은 친자녀와 위탁자녀에게 또 부모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몸소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국씨는 “밥을 싫어한 아이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직장생활 때문에 빵 종류나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또 화장실에 갈 때 밑이 빠지는 탈항 증세까지 있어 고생했는데 중학생(당시 4살)이 된 아이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제혜선씨는 “남편 때문에 동의했는데 이제는 이 아이들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만큼 큰 힘이 된다. 작은 봉사라도 그로 인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웃음 지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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