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서는 미국 … 북 외무성 발언 하루 만에 응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9일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 북한이 주권국가임을 인정한다고 거듭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수행해 러시아를 방문 중인 라이스 장관은 이날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CNN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북핵문제와 관련, "다시 말하건대 미국은 물론 북한이 주권국가임을 인정한다"면서 "그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스 장관은 "북한은 유엔 회원국"이라면서 "우리는 북한과 6자회담 틀 안에서 협상을 해왔으며, 우리는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줄곧 말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경우 "북측에 유리한 많은 것이 있다"면서 ▶대북 에너지 제공▶다자 안전보장 등을 언급했다. 미 국무부의 톰 케이시 공보국장도 이날 워싱턴에서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주권국가라고 재차 언급하면서 "6자회담 틀 안에서 북.미 직접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AP 등 미국 언론은 "라이스가 북한에 당근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최근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분명한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한) 좋은 의도(good intention)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논의도 가능하다며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북한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6자회담장에서 북한이 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라이스의 발언은 북한의 발언에 대한 화답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8일 "미국이 우리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평양과 워싱턴이 오랜만에 아귀가 맞는 발언을 주고받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북.미 실무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등장하고 있다.

◆ 중국의 대북 제재 불참=북한에 대한 라이스의 이번 '주권 인정' 발언은 중국의 '대북 제재 불참'발표와 함수관계에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중국에 '석유공급 중단 등 압력을 북한에 행사해 달라'고 주문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물밑 요청을 중국이 거부함에 따라 미국은 북한을 압박할 중요한 카드를 잃게 됐다. 이에 따라 입지가 약해진 미국이 다시 한번 평양에 유화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 한국 정부, "좋은 징조"=정부 고위 당국자는 "라이스 장관이 북한을 주권국가라고 재차 강조한 것은 매우 좋은 징조"라며 "미국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북한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 북한이 가장 반발하는 게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오명을 쓰고는 회담장에 나올 수 없다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하지만 미국의 공개사과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만큼 이번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사실상 최대한의 존중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서울=박신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