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뒤덮인 조선 개국공신 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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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지란 장군 사당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다.

22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오산시 가수동 85번지 야산. 풀숲을 헤치며 10여 분을 올라가자 작은 기와집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자물쇠가 굳게 잠긴 건물 안에는 청해백 사당(靑海伯 祠堂)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청해 이씨의 시조인 이지란(李之蘭·1331~1402) 장군의 사당이다. 이 장군은 여진인으로 고려 공민왕 때 귀화했다. 의형제인 태조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한 공으로 1등 개국공신 자리에 올랐다. 조선 초기 1·2차 왕자의 난 때도 공을 세웠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장군 후손들은 청해 이씨 집성촌이 있던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매년 4월 10일 제사를 지냈다.

 이 장군 사당이 신도시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2008년 8월 발표한 세교 2지구 개발계획에 따라 사당 부지가 학교 용지로 수용된 것. 사당을 옮기는 문제로 문중 갈등까지 겪으면서 관리가 소홀해졌다. 사당 주변에는 잡풀이 우거져 길이 사라진 지 오래다. 뒤편에는 이사 간 주민들이 버린 소파와 술병 등 쓰레기더미가 나뒹굴고 있다. 주민 이모(68·여·오산시 가수동)씨는 “젊은 사람들은 여기에 이 장군의 사당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라며 “이사 가는 사람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서 사당 주변이 쓰레기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가수동 주민들은 오산시에 “이지란 장군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귀화자이자 가장 성공한 귀화자”라며 “이 장군 사당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산시의회 최인혜(민주당) 의원과 김지혜(한나라당) 의원도 “지역의 역사적 유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산시 김기수 계장은 “문화재 위원들의 조언을 받아 사당을 도 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의해 해당 부지를 공원용지로 변경해 보존하거나 이전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산=글·사진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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