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남긴 과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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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끝났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영암 서킷에서 펼쳐진 ‘머신’들의 경주에서 스페인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우승했다. 축하한다. 이런저런 사고로 중도 포기한 레이서들에게도 위로를 보낸다. 무엇보다 시간도 부족하고, 지원도 미약한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기를 유치하고 치러낸 것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관람객이 8만 명이나 몰려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당초의 우려를 씻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흡한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대회 유치에 따른 인프라가 턱없이 부실했다. 첫째, 숙박시설이다. 광주와 목포 숙박업소는 때아닌 호황을 누렸지만, 관람객들의 불편은 그만큼 컸다. 일부 모텔은 소위 ‘짧은 시간’을 도입·운영해 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외국 신문에도 소개돼 체면을 구겼다. 둘째, 교통이다. 영암까지 도로는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아예 주차장이 된 도로변에서는 각종 무질서가 연출됐다. 준비된 셔틀버스는 제 기능을 못 했다. 셋째, 편의시설이다. 경기장의 주변에는 식당이나 각종 부대시설이 없었다. 아무리 첫 대회라고는 하지만 너무 미흡했다. 전남도가 “자신감을 얻은 게 수확”이라고 자평(自評)한 것은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임을 인정한 것 아니겠나.

이번 대회를 계기로 관광기획과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대회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숙박·항공·관광·쇼핑업계가 대목을 맞는다. 어떻게 하면 이들 업계가 함께 시너지를 창출하면서 수입을 극대화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독일은 1998년까지 열었던 ‘룩셈부르크 그랑프리’의 개최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관련업계가 함께 F1을 매개로 한 종합적인 관광기획에 나서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대회 기간에 각종 문화행사와 백화점 세일을 병행한다. 전남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인 장흥도 있고, 한류의 멋과 맛이 담긴 ‘슬로 푸드’의 고장이다. 첨단 스피드와 ‘느림의 미학’이 어우러진 독특한 F1 명소로 키울 수 있다. 도심과 화려함을 배경으로 한 모나코와 달리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가을의 질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