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칼데콧상 받은 에릭로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엔 어떤 일로 방문하게 됐나?

“이번 남이섬 세계책나라 축제에 22개국 42명의 동화작가와 일러스트들이 모였다. ‘평화’에 대해 각 국의 특색을 살려 ‘평화이야기’라는 책으로 묶었다. 어떤 나라에선 전쟁에 대한 것을, 또 어떤 곳은 이웃간의 갈등이 그려지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나라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책이다. 이런 주제로 한국의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돼 이번 방문이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한국 어린이들을 만나보니 느낌이 어땠나?

“어린이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바로 스토리에 대한 강렬한 욕구다. 5살까지의 아이들은 글보다는 그림과 이미지를 먼저 인식한다. 예컨대,강아지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 강아지가 짓는 모습, 소리, 친근한 느낌 등을 먼저 배운다는 것이다. 이번에 남이섬에서 어린이들과 만났을 때 나는 한국어를 모르고 아이들은 영어를 전혀 몰랐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상어와 돼지를 그리기 시작하니까 아이들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림이 아이들에겐 더 효과적인 소통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어떤 동화책을 자녀에게 읽히는 것이 좋은가?

“부모가 먼저 재미를 느껴야 한다. 책은 TV,컴퓨터와 달리 ‘함께 하는 활동’의 의미를 갖고 있다. 책 속 스토리가 부모와 자녀를 연결하는 대화소재가 되고 나란히 앉아 함께 책을 읽는 과정에선 공감대가 형성된다. 부모가 책에 흥미를 느끼면 자연스레 자녀도 책에 빠져든다. 어떤 지식과 교훈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우선이다.”

-지식과 교훈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어른의 시각에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좋은 동화책의 기준을 어떤 교훈을 담고 있는지에 두는 부모들이 있다. 친절과 예절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만 좋은 책이 아니다. 예쁜 바다 그림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교육이다. ‘불에 손대지 마’라는 말보단 다람쥐가 불을 피해 뒷걸음질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좋은 동화책은 그런 스토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직접 가르치려 할때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TV 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찾게 된다. 스토리 자체로 재미를 느끼게 해주면 충분하다.”

-자녀가 책을 읽을 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선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 읽어주기를 많이 한다. 하루 중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되는 시간을 부모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특성 상 부모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정감을 얻고 책에 집중하게 된다.

이 때 풍부한 제스처와 표현 등으로 자녀의 독서를 이끌어 주면 좋다. 예를 들어, 토끼가 주인공일 때 토끼의 목소리로 자녀와 이야기하듯 책을 읽는 것이다. 서로 역할을 바꿔 읽을 수도 있다.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의 관점에서 하는 책 읽기도 좋은 방법이다. 개, 고양이 등 어린이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캐릭터면 더 좋다. ‘얘는 어떻게 느꼈을까?’라며 새롭게 스토리를 구성해 본다. 이런 부모의 다양한 감정표현은 책 읽기의 재미를 더하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이 된다.”

-자녀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독후활동을 추천해준다면?

“그림 이어 그리기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동화책의 끝이 코끼리가 바다로 모험을 떠나는 장면이라고 가정해보자. ‘코끼리가 바다에 나가면 어떤 일을 겪게 될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커다란 귀로 헤엄을 칠거예요’라던가‘아니야 귀를 펄럭이며 날아 갈거야’ 등의 상상력을 발휘한 대답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럼그 대답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권한다. 자기만의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대개의 동화책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것을 주인공이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주인공의 행동은 수 많은 해결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자녀에게 ‘너는 어떻게 할거니?’라고 질문을 던져봐라.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된다.”

[사진설명]에릭로만은 "어린이가 책에 재미를 붙이는 첫 번째 동기는 부모"라며 "독서는 부모·자녀가 '함께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