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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38>가격이 완성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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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05면

올 하반기 국내 창작 뮤지컬 중 최고 기대작은 ‘서편제’였다. ‘서편제’라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인기 콘텐트 아니던가. 한국의 판소리를 서양의 뮤지컬과 어떻게 접목시킬지도 사뭇 궁금했다. 게다가 제작진의 위용을 들여다보면, 극본 조광화, 연출 이지나, 음악감독 김문정 등 그야말로 ‘뮤지컬 드림팀’이었다. 어찌 기대를 안 할 텐가.

작품은 지난 8월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했다. 예상대로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고요한 몰입, 차가운 소름을 부르는 엔딩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뤘다” 등등.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이자람·차지연의 가창력에다, 서범석·임태경의 연기력도 인상적이었다. 자- 이 정도 극찬이면, 이 정도 입소문이면 관객이 꽉 차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폐막을 2주가량 남겨 놓았지만, ‘서편제’ 객석은 여전히 텅텅 비어 있다. 왜? 관객이 워낙 자극적인 것만 좋아해서? 외국 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우리 것을 외면해서?난 ‘서편제’를 꾸벅거리고 졸면서 본 통에 이런 환호가 낯설었다. 하지만 어찌 반응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작품을 보는 시각이나 취향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다른 게 어쩌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얘기는 넘어가자. 오늘의 논지는 “왜 흥행에 실패했는가”다. 그건 객관적 사실이다. 원인 또한 분명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바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주범이다.

‘서편제’의 티켓 값은 주중 7만7000원·8만8000원, 주말 8만8000원·9만9000원이다. ‘서편제’가 올라간 극장은 600석 남짓한 중극장 규모다. 중극장이라면 대략 4만∼7만원인 게 지금까지 관례였다. 근데 9만9000원이라면 10만원에서 1000원 빠지는, 사실상 대극장 가격인 셈이다. 홈쇼핑을 연상시키는, 이 생뚱맞은 가격에 팬들이 고개를 돌린 거다.

물론 한 봉지에 5000원 하는 라면을 내놓아도 영양이 만점이고 맛도 좋으면 팔릴 순 있다. ‘서편제’가 그 정도였을까. ‘서편제’는 한지를 활용한 비움의 무대 미학을 자랑하곤 했다. 6만원을 내고 본다면 그럭저럭 볼 만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만원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지를 그저 좌우로 오가는 정도로는 뭔가 아쉽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10만원을 내고 ‘드림걸즈’의 현란한 패널 무대를 봤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 샹들리에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늘씬한 무희에 취했다. 그게 다 10만원 티켓 값에 포함돼 있다는 걸 관객은 경험적으로 체득해왔다.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점으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필름이냐 혹은 일회성의 무대냐를 꼽곤 한다. 난 두 장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비싸냐 싸냐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는 균일하다. 한국에선 9000원이다. 수천억원짜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건, 싸게 찍은 독립영화건 똑같다. 그래서 안의 내용물, 즉 텍스트(text)만 갖고 떠들면 된다. 뮤지컬은 그게 아니다. 가격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안의 내용물인 텍스트만 갖고 떠들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격 대비 만족도’ 같은 걸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이런 가격의 측면을 전문가는 사실상 간과해왔다. 반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관객은 음악·스토리는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격을 꼼꼼히 따졌던 게다. 가격이 바로 완성도임을 관객은 알고 있었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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