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예술에 가려진 파리의 참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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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린다(林達) 지음, 김택성 옮김
북로드, 399쪽, 1만3000원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병화 옮김
생각의 나무, 543쪽, 2만8000원

멋지고 우아하고 로맨틱한 도시. 사람이 숨 쉬고 아웅다웅 생활하는 도시라기보다 일종의 '문화 테마파크'. 이 두 권의 책은 파리에 대한 이러한 상투성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대신 파리라는 접시에 인간의 사상과 역사라는 재료로 만든 요리를 담고 있다.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의 지은이는 미국에 사는 동갑내기 중국인 부부다. 린다는 이들의 공동 필명이다. 1952년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문화혁명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책 한 권을 들고 파리를 간다…

이 '책 한 권'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93년'이다. 브르타뉴 남부 등에서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는 봉기가 벌어진 1793년을 배경으로 혁명의 소용돌이와 광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혁명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며 파리를 둘러본 역사기행문이다. 책으로 쓴, 파리와 프랑스 혁명 역사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저자들은 파리의 혁명 현장 곳곳을 여행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혁명의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반추한다. 그래서 이 책에선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20세기 문화혁명, 그리고 최근의 파리 기행이 어우러진 기묘한 화음이 들린다.

광기 어린 문화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 프랑스 혁명 당시 피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쓴 글임에도 자신의 시대에 대한 자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간 탐구를 위한 재료로 삼을 뿐이다. 그래서 비교적 담담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수필의 구실도 한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윤기가 느껴지는 대형 저작이다. 파리라는 하나의 주제(소재가 아니다!)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아니, '파리 읽기'를 통해 현대성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캐는 노력을 한다고 해야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저자는 나폴레옹의 제1제정이 몰락한 뒤 '부르주아'와 '사회 공화국'이라는 현대성의 두 핵심 요소가 파리에서 비롯했다고 강조한다. 언뜻 서로 대칭되는 듯한 이 두 개념은 사실 유럽 현대성의 상징이다. 부르주아는 귀족이 사라진 새로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다. 사회 공화국은 국가가 모든 계층의 복지를 책임지는 제도로 현대 유럽 사회시스템의 전형이지 않은가.

이 책은 연구방법만큼 글쓰기 방식도 다양하다. 로맨틱한 역사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부동산과 노동시장 등 경제와 인구에 대한 분석으로 금세 넘어간다.

분석대상이 광범위하고 분석의 깊이가 대단해 자칫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풍부한 사진과 삽화가 이를 덜어준다. 근래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보기 드문 좌파의 역저다.

데이비드 하비는 영국의 지리.인류 학자로 급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도시공간 문제에 접목하는 작업을 해왔다. 현재 미 뉴욕시립대 교수로, 실력있는 좌파 학자로 통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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