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이 사람] 탁신, 태국 현대사의 빛이자 그림자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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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탁신-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파숙 퐁파이칫
크리스 베이커 지음
정호재 옮김, 동아시아
524쪽, 1만8000원

태국,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성공했지만 우리에게 큰 관심국가는 아니었다. 97년 우리와 외환위기도 함께 맞았으면서도 연대감은 덜 했다. 그러더니 몇 달 전 정치 소요 때문에 100명 가까운 민간인이 죽고 난리다.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를 보니 생각이 바뀐다. 근· 현대 정치경험이 우리와 어찌 그리 어슷비슷한지…. 태국 정보의 종합선물세트인 『탁신』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우리 경험을 근대 아시아의 큰 틀 안에서 새삼 음미해볼 수도 있는 좋은 기회다.

 입헌군주제 태국은 근대의 출발이 일단 산뜻했다. 식민주의 덫을 피한 역량만 해도 어딘가? 역사학자 토인비의 칭찬대로 그들은 훌륭한 외교력을 동원해 침 흘리던 영국· 프랑스를 모두 등 돌려세웠다. 아이러니인 게, 그렇다고 저들이 우리보다 잘 살까? 그건 별도의 문제다. 무엇보다 태국에는 탁신 친나왓(61)이란 말썽쟁이 정치인과, 후진적 정치문화가 존재한다.

소용돌이 치는 태국 정치의 주인공 탁신 전 총리. [중앙포토]

 탁신은 명문 출신. 그걸 배경으로 2001년 총리가 됐다. 집권 뒤 높은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으나 바로 권위주의로 돌아섰다. 중산층이 등을 돌리자 탁신은 팝스타 뺨치는 행태를 보이며 포퓰리즘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재선에 성공했으나 거대한 역풍을 만났다. 쿠데타가 그것인데, 바로 쫓겨나야 했다. 끝이 아니다. 해외를 떠도는 그를 지지하는 서민층과, 반 탁신의 중산층이 살벌한 거리 싸움이야말로 정국 불안의 요인이다.

 『탁신』은 태국 100여년 근대사이자, 포퓰리스트 탁신에 대한 조명인데, 이 분야 개론서로는 국내 출판계에 거의 처음일 듯싶다. 우리 출판계는 아무래도 미국· EU 등 제1세계를 너무 과도하게 지향한다. 이 통에 ‘같으면서도 다른 ’사촌인 동남아는 찬밥 취급인데, 『탁신』은 이를 한꺼번에 만회하는 홈런 감이다.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가 훌륭한 분석서로 칭찬한 것도 당연하다. 관심이 가는 건 ‘책 속의 이 사람’ 탁신인데, 그는 ‘엄친아’다.

 명문 집안 출신에 미국 박사, 무엇보다 태국 최고의 갑부다. 특히 정보기술(IT) 물결을 타면서 돈을 긁어모았다. 이동통신사 친코퍼레이션이 효자 중의 효자인데, 탁신이 더 큰 돈을 만지기 위한 수단으로 총리가 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탁신』의 미덕은 ‘문제아 탁신’을 선악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러운 정치인이되 위대한 영웅의 측면을 가졌다고 본다.

 확실히 그는 아시아의 지도자 중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에 비해 급이 떨어진다. 그러나 낯설면서도 익숙한 인물인데, 우리 정치문화가 오래 전 바이바이 했기 때문에 기시감(旣視感)이 남아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위인이 한국 정치사회에 재등장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탁신』은 우리가 걸어온 길, 아슬아슬하게 피해온 길을 되짚어보는 복기(復碁)를 위해서도 절묘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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