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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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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회가 스타를 만들까, 스타가 대회를 빛낼까. 1970년대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라면 단연 ‘대회’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유럽방송연합 회원국 가수들이 국가 대항전을 펼치는 이 대회는 명실공히 스타의 산실(産室)이었다. 스웨덴의 무명 그룹이었던 아바(ABBA)도 74년 ‘워털루’로 우승한 뒤 곧바로 월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80년대 이후 이 대회의 명성은 퇴색했다. 세계 팝 시장이 급속히 미국 중심으로 개편돼 버렸기 때문이다. 88년에는 캐나다 출신의 프랑스 여가수 셀린 디옹이 발군의 가창력을 뽐내며 우승했지만, 그가 세기의 디바(diva)로 성장한 것은 5년 뒤 영어로 ‘파워 오브 러브’를 발표하고 나서의 일이다. 사람들이 디옹의 프로필을 보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기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3일 새벽 두 번째 우승자를 내놓은 노래자랑대회 ‘슈퍼스타 K’가 화제를 양산 중이다. 케이블TV로는 공전의 15%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인 가수 선발대회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30여 년 전 ‘대학가요제’를 연상시킨다. 77년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도 활짝 핀 것은 2년째인 78년이었다. 1회 대회의 성공으로 수준 높은 참가자가 대거 몰렸고, 그들 중 배철수·노사연·임백천·심수봉 등이 80년대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역시 78년 출범한 TBC ‘해변가요제’도 왕영은·주병진·구창모·이치현(벗님들) 등을 배출했다. 이후 다양한 대학생 가요제가 한국 방송·가요계의 등용문(登龍門)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90년대 이후 가요계는 개인의 재능보다 기획사의 육성 능력이 중시되는 쪽으로 변했다. 대학생 가요제는 빛을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K’의 성공은 ‘만들어진 가수’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대회가 앞으로 명성을 계속 유지할지도 결국 이 대회 출신의 신인들이 새로운 흐름을 이루며 가요계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로 수많은 ‘슈퍼스타K’ 도전자들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심수봉이다. 대학생 가요제 출신의 숱한 스타들 가운데 최고의 가수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너무 기성 가수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슈퍼스타K’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승자는 가려졌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