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명장을 만나다 ① 이승열 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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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오토텍 이승열(오른쪽) 명장이 직원과 함께 공정라인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품질명장인 그는 직원들의 고충, 고민을 덜어주는 큰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품질명장제도는 10년 이상 현장에서 근무하고 품질분임조 활동경력이 5년 이상인 사람 가운데 장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다. 대통령이 직접 지정패를 수여한다. 현장의 기능인, 기술인 역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명장들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역의 품질명장을 차례로 만난다. 갑을오토텍의 이승열(58) 명장을 첫 번째로 찾았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갑을오토텍의 ‘직장’인 이승열 명장에게 ‘현장 개선활동’은 인생최고의 기회였다. 신이 자신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말할 정도다. 현장 개선활동을 하면서 잃어버린 학창시절을 찾았고, 품질명장, 신지식인, 교수 등 꿈을 하나씩 실현할 수 있었다.

 이 명장은 어린 시절부터 핸드볼, 축구, 씨름, 유도, 태권도, 검도, 합기도 등 해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다. 유도 5단, 태권도 7단, 합기도 8단 등 단수를 세기도 어렵다. 이중 유도는 그가 가장 애정을 갖는 운동이다. 중학교 졸업 후 유도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포기하고, 방황을 시작했다.

 1976년 이 명장이 현대양행(현 갑을오토텍) 차량부 기능직 사원으로 입사할 당시만 해도 현장사원의 근무환경은 열악했다. 당시 이 명장은 사무직 직원이나 반장 등 동료, 상사와의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했다.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의 부족한 학력 때문인가 싶었다.

 결심했다. 입사 8년 후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30대 중반이 돼서야 고교 졸업장을 갖게 됐다. 이후 조금씩 달라졌다.

 이 명장은 “고교졸업장이 대단한 힘을 가졌던 것 같다. 업무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변하게 됐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먼저 나서서 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연스럽게 현장 개선활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회사에서 공장 신설 라인의 잦은 문제로 개선전문가를 뽑았는데 젊은 그가 뽑혔다. 현장 전문가가 된 후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개선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찾아 다녔다. 6년 동안 80여 차례의 사내외 교육을 받고, 산업안전담당자 등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도 5개를 취득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5년 대학에 입학했고, 경희대에서 석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현장 개선활동이 짧은 가방끈을 길게 만들어 줬어요. 그리고 자신감으로 가득찬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2001년에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품질명장이 되다

그는 20여 년전 재해 추진활동 등의 현장 개선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품질명장’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접했다고 했다. 당시 회사 내에서 추진하는 많은 개선활동 대회에 참여했고, 회사 대표로 사외대회에도 참석하면서 ‘품질명장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현장개선활동에 열심히 몰입하다 보니 꿈이 생기고 또 그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았습니다.” 노력하는 이 명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회사에서 그는 현장 관리자, 신지식인, 대한민국 품질명장으로 통한다. 회사를 벗어나면 ‘박사’ ‘교수’의 호칭이 따라붙는다.

 그는 남서울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사)한국과학마사지협회 지부장, 발 마사지사, 트레이너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 등의 명함도 있다. 이중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대한민국 품질명장이다. 지금의 그가 있게 해 준 1등 공신이자 인생의 전환점이 돼 주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바꾸면 돈이 된다

 이 명장은 87년 합리화추진 개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직원들의 안전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작업자가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낭비를 막는다고 생각했다.

 “현장이 지저분하면 근무 의욕이 떨어집니다. 또 근무할 때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꼭 무리가 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장직원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회사입장에서는 낭비인 것입니다.”

 그는 품질명장이 된 후 개인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인생의 새로운 목표와 자신감이 생겼다. 첫째, 보다 많은 개선활동가와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업에 대한 재도전이었다. 후배 양성을 위해선 많은 배움이 필요했다.

 주위에서 사내 개선활동을 추진하면서 생기는 문제점 해결을 위해 그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을 더욱 하게 됐다.

 ‘공정개선활동’ ‘안전활동’ ‘품질개선’ 등 직원들이 듣기만 해도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를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친형처럼 인생 상담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개선 이전에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진학문제, 개인의 고민 등 사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명장이 되기까지의 과정, 개선활동의 필요성 등을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이 명장은 “현장직원의 눈높이로 현장직원을 배려한 개선활동은 직원들에게는 물론 회사에도 커다란 유무형의 결과를 안겨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고 또 관심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공분야가 스포츠라 회사 업무와 무관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회사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활동에 도움을 줬다며 관심을 갖고 지켜봐줬다”고 자랑했다. 이제는 회사의 배려를 후배사원들에게 모두 내주고 싶다고도 한다.



갑을 오토텍은

40여 년 자동차 공조부품 만드는 중견기업

아산시 탕정면에 위치한 갑을오토텍 전경.

1962년 ㈜현대양행 설립 후 69년 차량용 라디에이터 제조사업을 시작했다.

 80년 만도기계㈜로 사명을 바꿨다. 93년 아산 공장을 준공하고, 99년 만도공조㈜, 2003년 위니아만도㈜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2004년 미국의 한 기업에서 위니아만도㈜ 차량공조사업본부를 인수해 모딘코리아를 설립했다. 2009년 지금의 갑을오토텍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위치해 있으며, 600여 명의 직원이 있다. 부산, 광주, 대구, 울산, 경기 안양에 서비스 사무실을 두고 있다. 자동차 기술변화에 대응한 모듈화, 소형 경량화, 환경 친화적 소재개발 등 미래형 공조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승용·상용자동차, 버스, 기차 등의 수송수단에 에어컨 시스템을 제공하며, 자동차 공조부품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4년간 연평균 20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천안시 풍세면에 ㈜동양철관, 아산시 배미동의 ㈜영일특수금속, 아산시 신창면 동국실업㈜ 등 전국에 건설, 화공, 병원, 자동차 부품, 철강, 레져, 염료, 도시환경, IT분야에 10여 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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