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입스, 호환·마마보다 겁나는 샷 울렁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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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골퍼들이 호환, 마마보다 더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요. 부상도, 슬럼프도 아닙니다. 바로 입스(Yips)입니다. 특히 프로골퍼들에게 ‘입스’는 선수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입스’란 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을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드라이버 입스뿐만 아니라 퍼팅 입스, 어프로치 입스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실제로 올 시즌 KLPGA투어 최고의 루키로 손꼽히던 한 선수도 드라이버 입스로 인해 사실상 시즌을 접었습니다. 선수들이 입에 오르기도 싫어하는 단어가 바로 ‘입스’입니다. 주말 골퍼들도 마찬가지라고요. 이번주 golf&은 입스의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걸려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

입스란 샷을 하기 앞서 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상적인 스윙을 하지 못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굿샷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중앙포토]

입스의 대표적인 증상은 근육이 경직되면서 급격한 동작이 나오는 것이다. 심리적 압박이 심할 때는 손이 떨리고 어깨가 경직되면서 호흡이 가빠지기도 한다. 입스는 좀 더 완벽한 스윙을 원하는 골퍼들을 찾아간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면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입스가 찾아오기도 한다. 실제로 최고의 스윙을 앞세워 1991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했던 이언 베이커 핀치(호주)는 드라이버 입스 증상으로 인해 슬며시 필드에서 사라졌다.

90년대 후반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데이비드 듀발(미국)도 마찬가지다. 체중 감량 이후 입스 증상이 나타나면서 아직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테랑 톰 왓슨(미국)도 한때 퍼팅 입스로 고생했다.

입스를 겪어본 골퍼들은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라며 몸서리를 친다. 17일 끝난 KPGA투어 한양 수자인-파인비치 오픈에서 우승한 김대섭(29·삼화저축은행)은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한 대표적인 골퍼다. 김대섭은 2006년 5월 메리츠솔모로 오픈 마지막 날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가 드라이브 샷 난조에 이어 스코어 오기로 실격 당하면서 ‘드라이버 입스’에 걸렸다. 그는 이후 2년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김대섭의 말.

“드라이버를 잡으면 마치 쇳덩어리를 든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티에 올려놓은 볼이 2개로 보일 때도 있었다. 어렵사리 백스윙을 하면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면서 어떻게 스윙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악성 슬라이스와 훅으로 볼이 어디로 날아갈지 몰라 티샷할 때 옆에 아무도 서 있지 못하게 했다.”

김대섭은 이어 “신기하게도 우드나 아이언 샷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입스는 100% 심리적인 문제다.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해도 결국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입스에 걸리면 한동안 클럽을 내려놓는 게 낫다.”

입스의 절정기였던 2007년 김대섭은 4~5개월 동안 클럽에 손도 대지 않았다. 골프를 잊기 위해 아침에 조기 축구회에도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입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은퇴까지도 고려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김대섭은 2008년 레슨 프로인 친구의 권유로 미국으로 동계훈련을 떠났다. 훈련 목적보다는 머리도 식힐 겸해서였다. 그런데 김대섭은 이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드라이버 입스에서 탈출하게 됐다.

“하루는 재미 삼아 티를 꽂지 않고 드라이브 샷을 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 볼이 똑바로 날아갔다. 스탠스를 넓게 취한 뒤 하체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티를 낮게 꽂고 샷을 하니깐 볼이 잘 맞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리를 내기 위해 하체를 많이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윙 리듬과 템포를 잃었던 것이다.”

김대섭은 “이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극단적으로 스탠스를 넓게 취하자 동료들은 “지금 화장실에서 응가 하는 거냐”고 놀리기도 했다. 서서히 스윙 리듬과 템포를 찾기 시작하면서 김대섭은 스탠스를 조금씩 줄였다. 지금도 김대섭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스탠스가 넓은 이유다.

눈 감고 퍼팅해 봤어요

2002년 KLPGA투어 스카이밸리-김영주패션 인비테이셔널 마지막 날.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강수연(34)이 긴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한지연(36)과 동타를 이뤘다. 당시 한지연은 1m 정도의 짧은 파 퍼팅을 남겨 놓고 있었다. 승부는 연장전으로 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지연은 짧은 파 퍼팅을 놓치며 생애 첫 우승을 놓쳤다. 한지연은 이때부터 6년간 퍼팅 입스에 시달렸다.

“주변에서 위로해주는 말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짧은 퍼팅 기회가 오면 아예 백스윙을 할 수 없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이 굳어졌다. 어렵게 백스윙을 해도 손을 뻗어주지 못했다. 정상적인 임팩트를 할 수 없으니 짧은 퍼팅을 놓치기 다반사였다.”

한지연은 퍼팅 입스를 고치기 위해 해보지 않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스트로크도 바꿔보고, 퍼터도 교체했지만 경기에만 나가면 마찬가지였다. 국내는 물론 미국까지 전문가를 찾아가 수차례 심리치료를 받았다.

“퍼팅이 무서워 일부러 아이언 샷을 짧게 한 뒤 그린 바깥에서 어프로치를 해서 파세이브를 하기도 했다. 입스보다는 차라리 부상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입스는 절대로 남이 고쳐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한지연은 미국의 한 심리치료사로부터 “퍼팅 입스로 고생하는 골퍼들이 부지기수이며 일부 선수들은 짧은 퍼팅을 할 때 아예 눈을 감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실제로 경기 도중 눈을 감고 퍼팅을 해봤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잘 들어갔다. 그러다 서서히 자신감을 찾았고 결국엔 퍼팅 입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입스는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찾아왔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프로치 입스도 있다

현재 J골프에서 레슨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송경서(34)도 드라이버 입스로 6년간 고생했다. 송경서는 고등부 랭킹 1위에 오를 정도로 유망주로 손꼽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드라이브 입스가 찾아왔다. 송경서는 “입스가 심할 때는 티 박스에 서면 왼쪽 30야드 지점에 있는 나무가 심하게 흔들려 보였다. 그쪽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슬라이스 스윙을 하지만 희한하게도 볼은 왼쪽 나무쪽으로 향했다. 한 대회에서는 4일 동안 OB를 15차례나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송경서는 “골프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드라이버를 부러뜨리기 위해 티를 낮게 꽂고 사정없이 내리쳤는데 볼이 똑바로 나갔다. 그 샷 하나로 거짓말처럼 드라이버 입스에서 탈출했다”고 말했다.

어프로치 입스로 고생하는 골퍼들도 많다. 송경서는 “프로골퍼들도 생각이 많아지면서 어프로치 입스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립을 짧게 쥐고 급히 클럽을 들어올리다 바지에 걸리는 바람에 바지를 찢는 골퍼도 봤다”고 말했다.

입스는 불치병이 아니다

골프 선수 상담을 주로 하고 있는 심리학 박사 조수경(41)씨는 최근 입스로 찾아오는 골퍼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입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입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 박사는 “입스는 불치병이 아니다. 입스가 골프의 걸림돌이 아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 박사도 “입스에 걸리면 잠시 골프를 중단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조 박사는 “가족이나 주변에서 조급하게 생각할수록 입스는 더욱 심해진다. 입스는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라면 당분간 생활을 정반대로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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