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문제는 산업·복지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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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20일 과천 농식품부 장관 집무실에서 “배추 쇼크를 계기로 작황예측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취임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취임식 바로 다음 날 쌀 수급 안정대책을 발표해야 했고, 곧바로 배추 쇼크가 왔다. 내무관료와 재선의원 출신으로 농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동안 50일이 훌쩍 지났다. 20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농업 문제는 산업적 측면과 복지의 측면을 분리해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강조했다.

 -배추 문제로 힘들었을 것 같다. 국감에서도 주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많은 지적이 있었다. 향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날씨 탓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예측 능력을 높이고 유통구조를 바꾸는 것인가.

 “궁극적으로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재배면적과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조사하는 기존 예측의 틀을 시세예측 조사로 바꾸겠다. 공급량이 변화할 때 가격이 어떻게 반응하고, 또 이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유통구조 개혁과 현장의 농산물 저장시설 구축, 고온에 견디는 품종 개발도 포함된다. 유통과 생산·저장·소비를 종합해야 가능하다.”

 -유통 과정에서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도 실패한 데는 여러 제약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유통비용률이 평균 44%에 달한다. 배추는 70%가 넘는다. 이를 개선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농협 개혁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민간의 경매를 중심으로 시장이 운영되는데 이를 전담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전국에 발을 갖고 있는 농협이 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쌀 문제 아닌가.

 “쌀은 특수한 작물이다. 생산량과 가격뿐 아니라 자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두 배로 늘었는데, 소비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구조적으로 공급과잉 상태다. 쌀 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올해 말 발표할 예정이다. 초점은 공급기능을 조정하는 것이다.”

 -농지 규모를 줄일 필요는 없나.

 “우리의 농지가 전체적으로 174만㏊, 논은 100만㏊다. 이 중 올해 농사를 지은 논은 89만㏊지만 실제 밥쌀용 쌀 생산에 필요한 면적은 70만㏊면 충분하다. 농지면적을 좀 조정해야 하는데 일단 연 4만㏊씩 타 작물로 전환하고 2015년까지 3만㏊씩 정부가 매입해 활용할 생각이다.”

 -쌀 관세화 수용은 올해도 물 건너 갔다.

 “너무 예민한 문제다 보니 그동안 농민단체들과 의견을 모으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쌀 산업 발전 5개년 계획에 포함시켜 내년에 신청, 2012년부터는 관세화로 갈 생각이다.”

 -직불금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인데,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직불금이 올해만 2조264억원으로 농업 예산의 20%나 된다. 이게 농업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 논란이 많다. 하지만 농가소득의 안정에 기여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84%가 논농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조정이 필요하다. 농가의 실질소득을 분석해 농가 단위로 운영하고, 공익형 직불금으로 전환해 밭작물 등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캐나다와의 쇠고기 수입 협상이 시작됐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동안 BSE(광우병) 발생 때문에 우리는 수입을 막았지만 아시아에서 전면적으로 수입을 금지한 곳은 없다. 그래서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 패널에 제소했다. WTO 패널의 결정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양자협의를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다. 월령이나 수입금지 부위, BSE 발생 시 대응조치 등 미국산보다는 더 강화된 조건을 적용하겠다.”

 -정부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 피해는 다른 나라와의 FTA보다 훨씬 커질 텐데.

 “우리에겐 가장 큰 현안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생산과 소비구조가 비슷해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 기본 입장은 농수산물은 중요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민감 품목으로 양해해 사전협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도 있으니,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농업이 농촌문제로 부각되다 보니 산업적 고려가 가려지는 것 같다.

 “중요한 지적이다. 농업은 ‘투 트랙’으로 봐야 한다. 농업은 산업 경쟁력으로 봐야 하고, 농촌 문제는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농촌 문제를 산업으로 보면 답이 안 나온다. 규모 있고 조직화되고 생산기반을 갖춘 산업적 측면으로서의 농업과 복지와 균형 차원의 농촌 문제로 구분해 정책을 펴야 한다.”

만난 사람=남윤호 경제데스크
정리=최현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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