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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다워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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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짧은 시간, 참 많이 달라졌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말이다. 지난 3월 말 춘천에 갔었다.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은, 너른 마당에서 닭을 키우는 ‘농군’ 손학규를 만났었다. 그는 당시 1년 반의 칩거를 끝내고 대표 경선에 나설지를 고민했다. 그 답을 들으러 갔었다. 웬걸. 거기서 “언제 서울로 올 거냐”고 물었다가 오골계가 산비탈에서 달걀을 품은 얘기 등 온통 닭 얘기만 듣고 왔었다.

 20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로 그를 찾아갔다. 당시에 지금을 예상했는지가 궁금했다. 빡빡한 일정 탓에 한참을 기다려 짬을 얻었다. 인사 후 질문을 던지려 하자 “대답할 게 있지 않다”며 갑작스러운 인터뷰를 사양했다. 아 참, 춘천의 그가 아니지. 대선 후보 지지율 2위의 당 대표가 무작정 던지는 질문에 답할 계제가 아닐 수도 있다. 메시지 관리도 필요한 그가 됐다.

 칩거인에서 야당 대표로, 지지율 5.7%(7위)에서 12.7%(2위, 리얼미터)로. 한길리서치 조사에선 14.4%란다. 컨벤션 효과라고들 하지만 무서운 상승세다. 정치인의 지지도란 게 주식과 닮아 급속히 오르다 조정을 받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 가느냐는 그의 몫이다. 목표는 집권이다. 그가 주역이 된 집권 말이다.

 그가 당 안팎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최근 보여주는 게 선명성 행보다. 그래서인지 “4대 강은 위장된 운하 사업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다가서고 있다. 대북 쌀 지원에 대해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 유지에 쌀을 쓰더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런 발언들은 그가 가진 색깔보다 왼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그는 한·미 FTA 협상 원안 찬성론자였다. 과거엔 4대 강을 대놓고 운하라고 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에 대해선 단호하기도 했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그가 당원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을 게다. 대표로 뽑아 놓았지만 “우리 편이 맞나” 하고 쳐다보는 당원들의 승인 말이다.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진보라는 선명성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진보로 당에선 이길지 모르나 대선에선 쉽지 않다. 중도를 아울러야 하는 건 그도 알고 있다.

 저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에선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났으니 변하기도 했겠지만 온건한 진보, 진보적 중도가 그의 모습일 게다. 그걸 바탕으로 정견을 밝히고 정책을 내놓는 게 손학규다움이다. 그런데 그가 요즘 너무 멀리 가는 건 아니냐는 느낌이다. 나중에 중도를 껴안아야 할 때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진보라는 게 유행을 타기도 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할 당시 진보가 득세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거기서부터 꼬였다. 민주당이 요즘 그런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은 아니다. 바람을 타고 너무 나갔다 돌아올 때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손학규다움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