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퓨전 사극에 상상력 입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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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은(右)씨와 강윤정씨가 `해신`에서 자미부인이 입었던 연회복을 펼쳐보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최근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KBS-2TV 드라마 '해신'.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극적인 스토리와 배우들의 호연(好演) 못지않게 독특한 의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옷 때문에 본다"는 시청 소감이 인터넷 게시판에 무수히 올랐을 정도다.

가슴선이 뚜렷히 보일 만큼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자미부인, 로마시대 검투사와 흡사한 갑옷 차림의 장보고는 여느 사극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설정이다. 그래서 "예쁘고 멋지다"는 찬사와 함께 "고증을 너무 도외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해신'의 의상을 총괄 제작한 KBS 의상실의 이종은(45).강윤정(31)씨는 "정통 사극이 아니라 액션과 멜로가 가미된 이른바 '퓨전 사극'인데다 극중 배경인 통일신라시대 의상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상상력을 상당히 발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조선시대와 달리 당시엔 여성들이 저고리를 입은 뒤 치마를 그 위에 입었어요. 그래서 목선이 사각으로 깊이 파이게 되죠. 등장인물들이 당(唐)과 교류가 많다는 점도 고려했어요. '당의 여성들은 가슴선이 노출되는 의상을 많이 입었다'는 내용이 문헌에 남아있거든요."

디자인을 맡은 강씨는 "지나치게 당나라풍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중국 디자이너들에게 우리 옷을 보여줬더니 '한국 냄새가 짙다'고 하더라"며 "양국이 복식(服飾) 문화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전에 방영된 사극 '태조 왕건'과 '용의 눈물'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함께 맡는 드라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방송사 내에선 '환상의 복식조'라 불린다. 원래 전산 담당으로 입사했던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의상실 업무를 맡게 돼 올해로 20년째 외길을 걷고 있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강씨는 방송 의상에 관심이 커 1997년에 합류했다.

현장 상황에 맞춰 옷을 대느라 밤샘을 밥 먹듯 하고, 고증에 맞춰 원단이나 디자인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하는 등 방송사의 의상 담당은 그야말로 3D 업종이다.

"하지만 보람도 커요. '해신'의 경우 자미부인.정화가 입고 나온 옷을 살 수 없느냐고 조르는 열성 시청자들 덕분에 힘든 것도 잊어버리죠."(강씨)

"촬영 때문에 얼마 전 아들 군대 가는 것도 못 지켜봤습니다. 가족에겐 미안해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합니다."(이씨)

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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